이 집 얼마예요?

이 집 얼마예요?

설계사무소에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집을 짓고 싶다는 사람들을 꾸준히 만난다. 땅을 사기 전에 어떤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검토를 받아보러 오는 사람도 있고, 이미 가지고 있는 땅을 개발하고 싶어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각자 다른 성격의 건축주들이 다른 사연들과 요구들을 가지고 회사를 찾는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부동산에서는 평당 350에 지을 수 있다고 했어요."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평당 350이라고 믿고 설계사무소를 찾는 많은 분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크게 없다. 설계비와 공사비가 어떤 관계인지, 집을 지으려면 어떤 단계들을 거치게 되는지 간략히 설명을 드리고, 그 가격으로는 죄송하지만 디자인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저희 회사에서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래서 인연을 맺지 못하고 떠나보낸 건축주 분들이 꽤 많아지고 있다.

 

주택은 말하자면, 맞춤복이다. 아파트는 따지자면, 기성복이다. 기성복이 가성비가 좋은 것은 당연하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을 짓고 싶다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집을 가지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윗집, 아랫집 신경 쓰지 않고 마당에 나가 고기를 구워 먹는 집, 아이들이 쿵쾅쿵쾅 뛰어노는 집, 밤새 크게 소리를 틀어놓고 영화를 볼 수 있는 집, 층간소음이 없어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러니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서 설계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지을지, 어떤 가구를 들여놓고, 어떤 타일을 깔 것인지 모두 건축주가 알고 있어야 할 것이고, 모두 의도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주택을 짓는 이유니까.

 

하지만 소위 '집장사'에게 짓는 평당 350짜리 집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쓴다면, 절대 그 가격에 맞출 수 없다. 평당 350짜리 집은 정해져 있는 평면에, 가장 싼 구조로, 가장 싼 마감재를 사용한 집이다. 여기 썼던 재료를 이곳에도 쓰고, 저곳에도 쓴다. 고민은 없다. 디자인은 되어있지 않다. 심지어 평당 350이라는 가격도, 별도의 비용까지 합하면 그를 훌쩍 넘어버린다. 조금 좋은 마감재를 고르려고 하면 가격이 처음에 제시했던 금액보다 훌쩍훌쩍 뛴다. 결국엔 350이라는 숫자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면, 별도의 항목들이 줄줄이 나올 테니까. 

'평당 350'이라는 말은 '옷은 만원'이라는 말과 꽤 비슷하게 들린다. 우리는 모두 옷을 사 입지만, 어떤 디자인의 어떤 소재를 사용했는지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가장 싼 옷은 그만큼 싼 이유가 있는 것을 우리는 모두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런데 똑같이 의식주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집을 짓기 위해서 건축주들은 가장 싸게 지어줄 수 있는 공사업체를 고른다. 심지어 시공 업체인데 평면까지 무료로 그려준다고 한다. 그런 종류의 일은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디자인을 기초로 하는 설계사무소들은 맡지 않는다.

회사에서 짓고 있는 다가구주택 현장의 옆집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공사를 시작하여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쪽 시공사는 건축사사무소가 건네준 20장의 도면으로 집을 짓고 있다고 했다. 반면, 우리는 이번에 비슷한 규모의 다가구 주택을 짓기 위해서 건축도면만 120장 넘게 납품했다. 건물을 짓는 설명서의 양이 다르다. 그려져 있지 않은 100장어치의 부분들은 어떻게 시공될지 아무도 모른다. 건축주도 물론 모르고 있다. 운에 맡기는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건축을 공부하는 많은 이들에게 건축은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꼭 나에게 돈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좋은 공간에 머물렀으면 좋겠고 그 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그래서 건축가들에게 건축은 예술이 되고, 역사가 되고, 때로 종교가 된다.

하지만 학교 바깥으로 나와 보니 건축은 누구에겐 일상의 집이고, 누구에겐 탐이 나는 상품이고, 누구에겐 돈을 불리기 위한 투자다. 중요한 것은 안타깝게도 건축이 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점. 그래서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고, 결국엔 회사로 데리고 왔다.

<건축가가 지은 집 108>에는 건축가가 설계해서 지은 준수한 108채의 주택에 대한 기본적인 도면과 개념, 참여한 설계 및 시공업체, 준공사진과 더불어 설계비와 공사비까지 밝혀져 있다. 평당 얼마에 이 집을 지었는지, 궁금증이 속 시원하게 풀린다. 이것이 건축가와 시공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겐 확실히 사이다 같은 책임에 틀림없다. 거리를 떠도는 루머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팩트니까.

붉은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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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대나무 숲을 걸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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