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치트키 콜렉터

건축의 치트키 콜렉터

치트키(Cheat Key)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게임 상에서 게임 진행을 조금 더 빨리,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속임수를 의미한다. 게임에서 주로 쓰는 말이지만,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를 많은 과정을 생략하고 더 빠르고 쉽게 결과를 얻어내는 것을 통틀어 비유하는 데에 쓰이기도 하는데, 건축에도 그런 요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요소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곳이 있었으니, 성수동 대림창고다.

나의 집은 5살 때부터 광진구요, 학교는 광진구와 성동구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요새 회사까지 성수동에서 다니고 있으니 이 동네의 토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더 이 근처의 옛날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성수동은 밤에 차가 끊기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동네였다. 공장이 많아서 내 옆을 지나가는 아저씨는 누구라도 갑자기 돌변해 나를 공격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아니, 실제로도 성수동은 흉흉한 범죄가 일어났다고 뉴스에 종종 등장했다. 그래서 수백 번 지하철을 타고 성수역을 지나갔어도, 성수행 열차를 탔을 때 빼고는 성수 역에 내려본 적이 없었다. 공장이 많은 곳에 굳이 내릴 필요가 없었고, 옛날부터 성수동보다는 건대 로데오거리가 더 번화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성수가 핫하다는 소문이 슬슬 귀에 들어올 때, 성수에는 아직 대림창고가 카페로 오픈을 하기 이전이었다. 이제는 성수동 핫플레이스의 중심으로 대림창고를 꼽지만 사실 그 시작은 대림창고는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커피를 마시러 자그마치를 더 먼저, 많이 찾았고 파스타는 성수동에서 찾기 힘든 메뉴 중 하나였다.

올해 상반기에 대림창고가 오픈하자,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사람들은 모두 대림창고를 갔다 왔다며 사진을 SNS에 게시했다. 커피 사진보다, 음식 사진보다 대림창고로 태그 된 사진들은 모두 그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사람들은 프레임 안에 공간을 담았다. 그러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대림창고를 찾는 듯 보였다. 엄청난 속도였다. 점심때에도 앉을자리를 찾기 힘들었고, 주말에는 카페를 횡으로 가로지르는 긴 줄이 생겼다. 결국 몇 주 지나자 주말에는 입장료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사람들이 대림창고를 찾았던 것은 결국 음식이 아니라, 커피가 아니라 공간으로 들어오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진을 찍기 위함이든, 인증샷을 남기기 위함이든, 결국 공간의 어떤 요소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았다는 이야기였다.

대림창고를 처음 들어갔을 때, 눈에 띄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었다. 아주 분명하고, 명확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었고, 그러한 특징들은 아주 쉽게 공간 자체를 '좋은' 공간으로 평가받게 만들었다. 감히 건축의 치트키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대림창고에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01 공장이었던 배경 덕분에 가능했던 높은 층고와 기둥 없는 대공간

대림창고는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카페로 쓰이는 곳과 레스토랑으로 쓰이는 곳인데 공간의 크기와 구조는 동일하다. 모두 가운데 기둥이 없이 오픈되어 있고, 높은 층고를 가진다. 60, 70년대에 이러한 공간을 지었던 것은 좋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일념보다는 그 효율성에 이유가 있다. 높은 층고를 가져야만 큰 기계가 들어갈 수 있고, 기계가 움직이고, 짐들을 자유롭게 쌓아두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림창고는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리모델링을 하면서도 공간을 가로지르는 벽을 세우지 않았는데, 이는 무척 현명한 선택이었다. 서울 시내에서 이러한 넓은 공간을 단층으로 사용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공간이 태어나기를 공장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02 단층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천창

넓은 공간이 좋은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천창이라면 대부분 환영하지 않을까 싶다. 자연채광으로 햇빛을 실내에서도 느낄 수 있으며 날씨에 따라 다른 빛의 성격을 시시각각 다르게 보여준다. 공간을 다채롭게 만드는 것이다.

천창은 투명한 유리가 아니라 폴리카보네이트를 연결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햇빛이 직사광선으로 들어오거나 하늘이 그대로 보이지 않고 은은한 빛을 전달한다.

 
03 높은 층고와 넓은 공간으로 인해 가능했던 그린테리어

건축 설계를 진행하다가 마지막 이미지를 만들 순간이 되면 느낀다. 우리에게 나무란 매우 큰 존재다. 외부에서 특히 나무는 공간을 채워주고 그림자를 만들어주며 활력을 불어넣는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실내에 무리하게 식물로 벽을 만들거나 중정을 만들어 나무를 심는다.

그런데 대림창고는 발칙하게도 나무를 통째로 옮겨와 실내에 심어버렸다. 높은 층고와 천창이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실행에 옮긴 것일 테지만, 쉽지 않은 공사였을 것이다. 나무는 보이는 것보다 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식물이 크면 클수록 깊은 토심이 필요하고, 실내에 햇빛은 들어와도 비는 들이치지 않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관리에 있어서는 몇 가지 걱정되는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강력한 효과를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확신은 현재로선 사실에 가깝다.

천창은 아마 식물들을 위해서 설치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천창에서 일부 손해 보는 단열 성능은 어떻게 해결할지 기대된다. 대림창고에서 마련한 여러 건축적 장치들이 겨울을 건강히 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대림창고는 현재 대한민국을 가로지르며 지나가고 있는 거대한 유행을 타고 나타났는데, 공장을 리모델링하면서 거칠고 투박한 재료를 그대로 남겨 다른 프로그램으로 살려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앤트러사이트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근대의 건물들을 살려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도시재생의 특징을 띄고 있기는 하나,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되는 건물이 아닌 건물들을 이용해 상업적으로 탈바꿈하는 성격이 있어 도시재생이라고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것은 좋은 공간으로 판단하게 하는 특징으로 보기보다는 유행의 한 종류로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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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받고 싶은 건축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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