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책을 펼치다

공원에서 책을 펼치다

11월, 최인아 책방에 대해 글을 썼었다. 최인아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여러 요소 중 하나는 크게 하나로 묶이는 열린 공간이었다. 하나의 열린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높은 책장으로 공간을 가르지 않고, 테이블 위에 책들을 올려놓는 형식으로 책을 비치했다.

하나의 열린 책방으로도 충분히 좋았는데, 여기에 다른 무기까지 갖춘 책방이 나타났다. 이곳은 퀸마마마켓 3층, 어른들을 위한 서점 PARRK다.

 
01 꽂아 두고, 올려놓는 책장

최인아 책방에서 책을 올려놓았던 테이블은 그저 테이블에 불과했다. 보통 책상이었다. 아마 그 정도로는 부족했는지, PARRK에서는 이곳만을 위한 제작 가구를 선보였다.

책장의 구조는 단순하다. 우선 허리보다 약간 높은 듯한 높이까지밖에 오지 않고, 그 위에 책은 놓여 있다. 그 아래에는 책을 수납하거나 다른 용품을 놓아두어 자연스럽게 시선을 아래로 향하게 한다. 간단한 구조였다. 책장이 아닐 수도 있다. 집 어딘가에 있는 수납장처럼 친근한 구조와 재료다. 자기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서점에 보통은 없을 것 같은 형태의 가구가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낸다.

건축은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책을 찾기 위해 고개를 치켜들거나, 수많은 책 등 사이에서 원하는 책을 발견하기 위해 얼굴을 책장에 파묻을 필요가 없었다. 책들은 그저 그 자리에, 책 표지를 드러낸 채 있었다.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면을 드러낸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책의 얼굴은 표지일 텐데 보통 서점에는 얼굴을 드러내고 있을 수 있는 책들은 아주 한정된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자리에 있는 책들만 그 영광의 자리에서 얼굴을 위풍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다. 그 외의 책들은 모두 자신의 옆면, 책등만 보인 채 숨어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른을 위한 책방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PARRK에는 도서 분류가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이유를 짐작하자면, 아마도 그것은 원하는 분야 이외의 책들도 구경하게 하기 위함이리라. 책들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대충 뭉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건축 책들을 찾기 위해서 철학 책도 지나쳐야 하고, 여행 책들도 뒤적이면서 움직이게 되고, 에세이 집을 지나칠 땐 결국 한 권 들고 건축 관련 서적에 도달한다.

 
02 낮은 책장으로 만든 하나의 열린 공간

공간을 길게 가로지르는 총 4열의 책장들. 중간에 길을 터줬으니, 총 8개의 책장이 배치되고 방문객들은 그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책을 구경한다. 모두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는데, 머리 위는 열려있다. 건물의 구조가 겉으로 노출되어 거대한 콘크리트 보들이 지나가는 것과 함께 열을 맞춰 조명이 지나간다. 깔끔하고, 정돈된 계획이다. 가장 단순한 형태와 재료를 유지하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배경 요소들은 이곳에 들어온 서점을 부각한다. 나무로 짜인 책장과, 그 안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 채 꽂혀있는 책들이 그 주인공이 된다. 배경이 앞서 나가지 않은 덕분이다.

책들이 모두 봐달라고 말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그 순간 또는 계단에서 올라온 그 순간에 마주하는 그 얼굴들 때문에 발길은 자연스레 서점 안으로 향한다. 가장 가까이 놓여있는 사진집부터, 가장 멀리 보이는 여행서적들까지.

 
03 공원에서 책을 읽다

3일 정도의 휴가가 주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난 하나의 큰 고민 앞에 서게 된다. 어디로 가서 책을 읽을 것인가.

a. 숲 속으로 들어가 책을 읽는다. 바람은 잎을 흔들 것이고, 햇빛은 따뜻하게 내릴 것이다. 눈부시지 않고,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그늘을 찾아 아래에 캠핑 의자를 펼쳐놓고, 커피를 내리고 책을 펼친다. 그렇게 시계를 한참 동안이나 보지 않고 집중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따뜻한 기운을 가진 수필집이면 좋을 것이다.

b. 파도가 치는 바닷가로 떠나 책을 읽는다. 바람은 소금기를 머금은 채 내 머리칼을 스쳐 지나갈 것이고, 배경 음악은 역시 파도 소리일 것이다.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캔 모래에 꽂아 놓는다. 블랑. 아니면 호가든도 좋다. 그리고 책을 펼친다. 강한 흡입력을 가진 소설책이면 순식간에 글자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이 두 가지의 휴가 계획안 중 하나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어느 것도 나쁘지 않다. 도리어 둘 모두 나에겐 훌륭한 휴가 계획이다. 그리고 이곳, PARRK는 확실히 전자에 가깝다.

이 서점의 이름이 PARRK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낮은 책장을 제작하고, 가구와 책 이외에 공간에 아무런 손도 대지 않은 것은 결코 절약 차원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공간의 의도는 철저하게 도산 공원을 서점 안으로 끌어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시도는 기존 건물의 구조와 내부 공간계획과 맞물려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은 듯 보인다.

3층 발코니 부분의 프레임으로 도산 공원이 쏟아져 들어온다. 실내에 자리 잡은 책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마치 숲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책들과 함께 자연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책을 어서 그곳에서 골라 자신에게 오라 도산공원은 계속 말을 걸고 있다. 그래서 가을에도, 겨울에도 이곳은 좋을 것이다. 책을 살 생각이 없던 사람들도 결국엔 책을 한 권 집어 들게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날이 좋은 날에는 책을 들고 바로 앞에 자리 잡은 도산공원으로 나가 책을 한 번 펼쳐보고 싶어 질 테니까.


퀸마마마켓 건물에 대한 글을 준비 중에 있는데, 그보다 먼저 PARRK에 대한 글을 먼저 쓰게 되었다. 퀸마마마켓과 PARRK는 역시 구분되어야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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