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틀을 깨는 창의성

우리 안의 틀을 깨는 창의성

00 놀이의 장소를 고민하며

얼마 전, 놀이터 설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바로 앞 부지에 짓는 놀이터이기 때문에 주 사용자는 초등학교 학생들. 아이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어야 했다. 미끄럼틀, 그네, 시소는 모두 초등학교 운동장에도 있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터에서 무엇을 하면서 놀아야 할까? 다시금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무얼 하며 놀면 가장 재밌을까 고민에 빠졌다. 놀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갔다.

놀이터에 관한 많은 사례들을 찾아보다, 아주 예전에 읽었던 기사를 다시금 찾아 읽었다. 대상이 초등학생뿐만은 아니지만, 변변한 축구장을 가지지 못한 방콕의 아이들에게 조금 색다른 모양의 축구장을 만들어 준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진행은 시행사(developer)가 했지만, 그것은 건축가의 역할이기도 했다. 도시의 버려진 곳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쓰임을 제안하는 것. 사용자에게 새로운 기능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

기사를 다시 꼼꼼히 읽으면서 창의적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창의성을 제대로 보여준 태국의 프로젝트를 스스로 잊지 않고자, 그리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자 그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

 
01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creativity'라고 말하면 조금 더 와 닿는가? 한글로 말하든 영어로 말하든 창의성이라는 것은 뚜렷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임이 확실하다. 에디슨처럼 전구 정도는 발명해줘야 창의적인 것일까? 아이에게 창의성을 길러준다고 창의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수업을 진행하는 많은 학원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묻게 된다. 창의성은 도대체 뭘까?

창의성이 필요한 수많은 직업들이 있겠지만, 아니, 모든 직업에 창의성은 필요한 능력이겠지만 내가 가진 직업인 건축가에게는 특히나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예술적인 건물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존의 방법을 답습해서는 풀 수 없는 도시와 건축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해법이 더 좋은 답안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창의성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요구사항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정도는 다르겠지만, 고정관념을 머릿속에 담고 살아간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아마도 어느 정도의 공통된 고정관념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심코 맞다고 생각하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이 어느 정도 진실일까? 그저 사람들끼리 그렇게 하자고 정한 규칙을 진리인 것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단언컨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무수한 고정관념들은 차례차례 무너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과 답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답안을 내는 것이 결국 창의성이 아닐까. 고정관념을 부수는 것, 그러니까 우리 안의 틀을 깨는 것.

 
02 찌그러진 축구장

태국의 슬럼 지역에는 지역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놀이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밀도가 높은 도심지역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터를 만들어주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는 길거리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안전하게 놀 공간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청소년들은 폭주족이 되어 문제를 일으키곤 했고, 놀 장소를 찾지 못한 아이들은 갈 장소를 잃어버렸다.

부동산 디벨로퍼인 AP Thai는 지역의 버려진 필지들을 이용해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놀 장소를 마련해주기로 했고, 그것은 네모난 모양이 아닌 비규격의 축구장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프로젝트일 수도 있겠다. 땅을 정리하고, 새로운 바닥을 깔고 색을 칠한 것뿐이니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사용되지 않던 땅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 훌륭한 프로젝트다. 요새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가성비로 따지면, 아주 좋은 프로젝트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에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이 프로젝트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놀이터처럼 기성 미끄럼틀과 그네들이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AP 팀은 그리 하지 않았고, 이 축구장 프로젝트를 통해 규격화된 스포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부순다. 왜 수많은 스포츠는 네모난 라인 안에서 이뤄질까? 애초에 사각형 안에서 이뤄질 이유는 없다. 그저 그것이 그리기 편하고, 생각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한 번 정한 이후에는 바꿀 이유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축구나 농구는 모두 원한다면 원형의 코트 안에서도 이뤄질 수 있는 스포츠다. 축구와 농구의 핵심은 상대방의 골대에 공을 넣는 것이지, 사각의 틀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다. 사각의 라인을 그릴 수 없다면, 공평할 수 있는 영역만 구분 지어주면 그만이다.

그러니 사용되지 못하고 있었던 찌그러진 땅에 찌그러진 축구장을 넣은 것은 아주 창의적인 답안이었다.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해법을 통해 기존의 문제를 해결해냈으니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AP 팀은 이렇게 만들어진 방콕의 비규격 축구장들이 방콕의 청소년들에게 다시 창의성을 부여하고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랐다. 나아가 축구장들은 아이들과 청소년뿐만 아니라 주변의 주민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그나저나 나는 새로운 놀이터를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다.


위 프로젝트의 내용들과 사진은 모두 dezeen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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