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

좋은 어른

지금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 아무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 굉장히 내성적이었다. 어느 정도 내성적이었냐면, 반에서 가장 말이 없는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모두가 고민 없이 날 가리켰다. 나는 왜인지 누군가의 앞에서 이야기하거나 나서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고 싫었다. 투명인간인 것처럼 그 자리에 존재는 하되, 누구의 관심도 나를 향하지 않기를 원했다. 아이들이 나를 반장 내지 조장 같은 것으로 추천하면, 나는 울면서 마다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가 1년 학교를 일찍 들어갔던 탓일 수도 있다. 6살이 되는 해, 1년 유치원을 다니고 7살이 되자 곧바로 유치원 생활을 중단하고 초등학교로 보내졌다. 유치원에서 언니였던 사람이 졸지에 같은 반 친구가 되었다. 모두가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언니 내지 오빠라는 생각이 날 소심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유는 큰 키를 가진 탓일 수도 있다. 언제나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초등학교 때 나는 엄청난 속도로 자라났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왠지 눈높이가 높아진 느낌이 들었다. 진짜다. 그래서 원치 않아도 사람들은 나를 먼저 쳐다봤다. 모두가 내 키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그다음이었다. 그것이 싫었을 수도 있다.

 

그런 나를 그나마 이 정도의 사회적 인간으로 만들어 준 것은 한 마디였다. 구구절절한 격려의 말보다 "괜찮아."라는 한 마디의 말이 나에게 많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보통 나에게 그렇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엄마였다.

내게 혼났던 기억은 많지 않다. 거의 없다. 나는 엄마에게 혼이 난 적이 없다. 동생이 잘못한 것 때문에 같이 혼난 적은 있었지만, 내 잘못으로 혼난 적은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괜찮다고 했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어떻게 다 그렇게 괜찮을 수 있었을까.

물컵을 엎었다. 엄마는 닦으면 되니까 괜찮다고 말했다. 실수로 전등을 깬 적이 있었다. 나의 실수였는데, 그때 엄마는 곧장 괜찮다고 말해줬다. 엄마가 사 준 팔찌를 사자마자 금세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엄마는 잃어버린 내가 더 속상할 것이니, 자신은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다시 사면된다고 했고, 다시 사버렸다. 집에 불을 낼 뻔한 적도 있었다. 당황한 탓에 기름에 물을 부어버린 나의 멍청함 때문이었는데, 그때도 엄마는 괜찮다고 말했다. 지금도 천장에는 불에 그을린 자국이 선명하다.

 

그렇게 20여 년을 살자, 엄마처럼 나도 대부분의 일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 세상은 금세 무너지거나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려움과 초조함은 사실 대부분은 괜찮을 일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금세 괜찮아질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누군가의 잘못에 앙심 품지 않고도 괜찮다고 넘길 수 있었다.

나는 늘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이란 자기보다 어리고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냉정하되 속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그에 기반해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자기보다 젊은 이의 신념을 위해 내 신념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 <나의 친해하는 적>, 허지웅

그래서 나에게 좋은 어른이란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특히 그것은 자신보다 어린, 경험이 없는, 아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어떤 잘못이나 실수를 해도 그것으로 인해 이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손해는 있을 수 있어도, 그것은 곧 경험으로 치환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아이를 데리고 타는 부모를 종종 본다. 어떤 아이는 얌전하지만, 또 어떤 아이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떼를 쓰는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내는 엄마를 언젠가 한 번 본 일이 있는데, 난 깜짝 놀랐다. 그것은 아이를 가르친다기보다 본인의 짜증에 더 가까웠다. 아니, 협박에 더 가까웠다. 한 번만 더 떼를 쓴다면, 다신 놀아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훈계로 볼 수 없는 말이었다. 과연 그는 좋은 어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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