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놀기 위해 태어났다

나는 놀기 위해 태어났다

누구에게나 항상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글귀나 명언이 있다. 좌우명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것을 가슴 한 구석에 조용히 묻고 살아간다. 나에게도 그런 문장이 하나 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하지 못한다.

언제나 기억하고 싶어서 나는 이 문장을 카카오톡 프로필 대화명에 적어 놓았는데, 얼마 전에는 후배 한 명이 2011년에 만들었던 전시회 포스터 사진을 나에게 보내며 이때부터 지금까지 쭉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냐고 놀라워했다. 사실은 징글징글하다는 투로 말했다. 생각해보니 카카오톡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적어놓았나 보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다는 그 말은 사실은 누구라도 한 번쯤은 펼쳐보았을 그 책에서 가져온 말이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청춘에게 아파야 할 당위성을 준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따왔다. 다른 사람이 나의 대화명을 읽을 때면 내가 지금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쉬지 않고 노력하고, 쉬지 않고 일하고, 쉬지 않고 공부하는 것 같을 테지만 내가 이 말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유는 아예 그 반대다. 지금이 아니면 놀 수 없으니,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놀자는 뜻으로 적어놨다.

 

고백한다. 사실 나는 노는 것이 너무 좋다. 노는 것은 해도 해도 질리지가 않는다. 혼자 노는 것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것도 좋다. 집에서 노는 것도 좋고, 밖에서 노는 것도 좋다. 세상을 살면서 일은 안 하고 평생 놀기만 했으면 소원이 없겠다. 쉬지 않고 일할 자신은 없지만, 쉬지 않고 놀 자신은 있다. 나의 인생 목표는 두 번, 세 번 고민해도 역시 놂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렇게 살 수가 없다. 놀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시간의 일부를 돈으로 치환한다. 직업을 가지는 것이다. 내가 취업을 한 유일무이한 이유는 놀기 위해서다. 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나는 나의 시간과 능력을 팔아서 돈을 얻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시간을 다 팔아버리면 안 된다는 점이다. 적당량의 시간을 놀기 위해서 남겨두어야 한다. 야근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돈이나 권력, 지위보다도 재미있게 잘 노는 사람이 가장 부럽다. 근대화가 우리 머릿속에 새긴 집단적 무의식인지 또는 자본주의의 의식화인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다. 노는 것은 항상 죄악시됐다. 놀면 어쩐지 맘 한구석이 불편하다. 노는 것은 일하는 또는 공부하는 중간의 일탈된, 주변적인 행동일 뿐이 다. 우리는 개미와 거북이를 떠받들고 베짱이와 토끼를 멸시한다. 우리는 일하는,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서의 인간인 호모 파베르다. 일을 통해서 자기를 실현한다고 배운다. 나는 호모 루덴스이고 싶다. 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놀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 놀면서 이 세상에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놀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노는 데는 어떤 의무와 조건도 붙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자유는 신의 특징이 다. 신은 누구의 창조물도 아니고 다른 누구를 위해 일하지 않으며, 세계는 제우스의 장난이라는 니체의 말대로, 세상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에 창조한 것도 아니다. 신은 스스로 연유하며 스스로 완결된 다. 노동이 신성한 게 아니라, 놀이가 더 신의 속성을 닮았다. 놀이는 일상적이고 지루하고 관습적이고 당위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즉흥적이고 자발적이며 사소하며 창의적인 세계로 가는 몸짓이다.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 <판사 유감>, 문유석

 

문유석 판사가 쓴 <판사 유감>에서 유감스럽게도 '판사'로서의 삶에 대한 부분보다도 위의 문단이 가슴으로 훅 들어왔다. 책을 읽으면서 100% 공감하여서 어디엔가 저장해 놓고, 평생 잊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는 드문데 바로 이 부분에서 내가 그랬다. 의문을 갖는 부분도 나와 같았다. 왜 사람들은 놂에 대해서 죄의식을 가지는가?

 

얼마 전, 친구에게 같이 휴가 쓰고 놀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 친구는 이번 달에 이미 휴가를 많이 썼다고, 조금 곤란하다고 답해왔다.

"또 휴가 쓰면, 소장님이 놀려고 회사 다니냐고 하겠어."
"음? 놀려고 회사 다니는 것 맞잖아?"

아직 우리에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놀려고 회사 다니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왜 모두가 놀려고 회사 다닌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인가? 조금 더 당당해질 순 없을까? 회사에겐 미안하지만, 회사의 발전을 위해 나의 휴가를 헌납할 생각은 1도 없다. 나는 언제나 놀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다.

 

전 세계를 둘러봐도 우리처럼 열심히 일하는 나라는 드물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저성장의 물결을 탔다. 이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그만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조금 더 놀았으면 좋겠다. 자기계발서가 이제는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왔으면 좋겠다. 모두가 주말에 무엇을 하며 놀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으면 좋겠다. 꼭 외국으로 나가지 않아도, 국내에서도 틈틈이 많이들 여행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 좋겠다.

 

우리도 돌려막기를 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돌려서,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할 시간을 돌려서, 아름다운 음악과 책을 즐길 시간을 돌려서, 그저 몰려드는 일을 막아 내는 데 쓰며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일만 하다 보면 어느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서 하고 있는 지를 잊기 쉽습니다. 그게 진짜 중요한 것인데 말입니다.

─ <판사 유감>, 문유석

 

노는 것은 죄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놀기 위해 태어났다.

여행의 시작 그리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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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식혀주는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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