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그리고 끝

여행의 시작 그리고 끝

01 여행의 시작

여행의 시작은 도대체 언제일까? 비행기에 앉아 이륙하기를 기다리는 그 순간? 캐리어를 끌고 현관을 나오는 그 순간? 비행기 예약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

구글 지도를 띄워 놓고, 여행 서적을 펼쳐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여행 계획을 짜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여행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오히려 여행 계획을 짤 때가 더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생각한 대로 계획은 짜이니까. 여행의 설렘을 방해하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으니까.

단지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다. 나의 경우에는 최대한 여행 계획을 단순히 짜는 것을 선호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가면 여행이 주는 감동이 반감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비행기 표, 숙소 예약, 교통편, 보고 싶은 곳 몇 군데만 정해 놓고 떠난다. 특히 해외에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그랬다. 세세한 계획은 여행 중에 카페에서 정해도 되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각종 블로그 후기들을 모두 섭렵하고, 틈이 날 때마다 검색해서 여행을 떠나기 한참 전부터 마음이 이미 떠나 있는 사람도 있다. 나의 남자 친구가 그러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아 익숙하다며 웃었다.

 
02 여행 중

여행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은 그 자체로 낭만적이거나 하지는 않다. 우리는 여행을 가서 길을 잃고 헤매고, 힘들고 지치면 짜증도 낸다. 모든 음식이 맛있지도 않고, 모르는 언어로 잔뜩 쓰여 있는 메뉴판에서 글씨 모양만 보고 판단한 음식이 실패할 경우는 성공할 경우의 수보다 많을 것이다. 매일매일 돌아다니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다음 날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것도 결정 장애를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는 만만찮은 일거리다. 심지어 보통 유명한 여행지는 사람도 많다. 줄을 서느라 계획보다 늦어지는 여행 일정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늦어진 일정에 계획한 장소를 방문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행을 굳건히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으로써 믿고 있다. 왜냐하면,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보다 내 몸을 부딪혀 알아가는 것이 더 속 편한 일이기 때문에.

"응, 돈으로 사소하게 사서 해결할 수 있는 건 돈으로 해결하는 게 옳아. 일본 가고 싶은데 방에다 일본 그림 그려놓고 만족하는 것보다 그냥 일본 가는 게 나아. 그게 훨씬 더 싸게 먹히는 겅. 그런데 아직은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으니 평소에 운동을 해야지. 그리고 정신력도 진짜 중요해. 이게 나의 행복 철학이다. 정신, 육체, 돈의 삼각형 이론."
─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에세이 속 장강명 작가와 HJ 님과는 다르게 나는 여행에 크게 돈을 아끼는 편은 아니다. 아니, 사실은 돈을 쓰러 여행을 간다고 생각하는 쪽에 더 가깝다. 나중에 집에 가서 후회하느니, 비행기 값 생각하면서 당장 사거나 해버리는 편이 더 좋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망설일 만한 고급 레스토랑에 자신만만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맘에 드는 물건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데리고 오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도 한다. 특히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에 친구는 1초에 만 원씩 하늘에 뿌리면서 내려오는 것이라고 웃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에라이'하면서 당장 쿨해질 수 있는 용기는 여행이 준 형태 없는 자신감의 발로다. 그러기 위해서 여행을 가는 것은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변덕스럽고 싶으면 변덕스러워도 되고, 돈을 쓰고 싶으면 쓰면 되고, 아끼고 싶으면 아끼면 된다. 여행에 왔으니,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03 여행의 끝

그렇다면 여행의 끝은 언제일까? 여행의 시작과 여행의 순간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간들인 것 같지만, 여행의 끝만은 그렇지가 않다. 여행을 어떻게 마무리하는지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나의 경우에는 찍어 온 사진과 동영상을 정리하여 플리커를 비롯한 이곳저곳에 업로드를 하고, 사진을 백업해 놓으면 그제야 여행은 일단락된다. 학생 때에는 그나마 돌아와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여행이 끝났는데, 취직을 한 이후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일상이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항상 몰려들었기 때문에 여행의 끝을 내기가 쉽지가 않다. 끝을 내지 못한 여행들이 줄을 서서 날 기다리고 있다. 언제쯤 여행을 모두 끝마칠 수 있을까? 여행을 끝내는 속도보다 내가 다시 여행을 떠나는 속도가 더 빠른 것이 함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이 책은 장강명 작가의 여행을 끝내는 방법이었을 테다. 하루 만에 술술 읽히는 5년 만에 신혼여행은 하루 만에 내가 보라카이로 4박 5일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생생했다. 글은 사진과는 또 다른 기록의 장치라서, 직접 눈 앞에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가지는 허구의 힘이 있다. 활자가 가진 무기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케 하는 것.

여행이 글로 기록된다는 것이 잠깐 부러워졌다. 여행을 기록하는 것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다시금 그 기록을 통해 여행의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도 그러하고, 동영상도 그러하다. 글도 그러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좋은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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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놀기 위해 태어났다

나는 놀기 위해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