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입은 활자의 공간

취향을 입은 활자의 공간

01 서점이 도서관이 될 수 있다는 것

6학년 때, 친구를 따라 테크노마트 지하에 있었던 서점에 갔다. 친구는 나에게 처음으로 서점에서 책 읽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책을 펴고 읽었다. 높은 책장들은 우리의 모습을 가려주었고, 우리의 등받이도 되어주었다. 서점이 곧 책 파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그것은 새로운 해석이었다. 서점은 도서관도 될 수 있었다. 내 주위의 많은 책들이 곧 내가 사야 할 책이 아니라 펴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되었다. 서점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배웠다.

지금도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서점에 들르곤 한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으면 책을 일단 고르러 가고, 여행을 가기로 하면 일단 그 도시에 관한 책을 보러 간다. 리디북스 페이퍼(이북 리더기. 책을 읽을 수만 있는 기계다.)를 들고 다니면서 전자책들을 구매하지만, 그래도 서점에 가는 것은 나에겐 기분 좋은 산책이고, 쇼핑이다. 어떤 책들이 새로 나왔고,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라와 있는지 구경하고 나면 어느새 내 손에는 사고 싶은 책들이 들려있고, 그렇게 데려온 책들이 한번 펼쳐지지도 못한 채 책장에 꽂히는 경우도 많다.

언제나 나중에 나만의 집을 갖게 된다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역시나 서재다. 지금도 내 방의 한 벽면은 모두 책장이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나는 높은 층고에 바퀴 달린 사다리를 타고 책을 빼내야 하는 공간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런 곳에 대한 로망을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파주 지혜의 숲은 연일 사람들로 북적이고, 교보문고는 무진장 크고 긴 원목 책상을 가져다 놓는 것만으로도 인산인해여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려면 한동안 빈자리가 나길 기다려야 할 정도다. 책이 잔뜩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은 특별해지는데, 취향을 입은 책의 공간이 나타났다. 최인아 책방이다.

 
02 책 이전의 종이, 종이 이전의 나무

책을 목재로 만들어진 책장에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종이의 묶음이고, 종이는 나무에게서 왔다. 본질이 같은 것들은 같은 장소에 있을 때 이질적이지 않다. 꼭 맞는다.

최인아 책방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우리는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가는 여정에 발을 들인 것이다. 목재로 두껍게 짜인 책상과 책장은 물론 철물로 고정되어 그 하중을 받쳐내고 있지만,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닿는 부분은 모두 목재다. 테이블과 의자 모두 그렇다.

우리가 나무라는 재료를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 따뜻해서일 것이다. 나무처럼 따스한 건축적 재료는 찾기 힘들다. 콘크리트보다, 철골보다 또는 플라스틱보다 부드럽다. 단열성을 제외하고, 순수히 촉감에 의해 느껴지는 온도로 인해 우리는 왠지 모를 아늑한 분위기를 나무라는 재료 속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조금 더 물리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열전도율에 관한 이야기가 될 테지만, 너무 그쪽으로 가진 말자.

어렸을 적부터 나는 거실을 마루라고 불렀다. 아직도 거실이라는 말보다는 마루라는 말이 나에겐 더 친숙하고 익숙하다. 건축을 전공하고 나서부터는 '마루'라는 단어가 거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 구분해 쓰기 시작했지만. 마루는 사실 나무를 길게 쭉쭉 잘라 평평하게 바닥에 깔아놓은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직도 종종 내 입에서는 마루가 거실의 뜻으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곳은 정말 마루다. 최인아 책방은 그래서 모든 책상들과 책장들이 바닥과 하나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가구는 화려한 형상으로 치장될 필요가 없었다. 가장 간단한 구조로 짜였다. 

 
03 시원하게 열린 책방을 가능케 하는 것

우리가 보통 책을 구입하는 장소를 떠올려보자. 교보문고, 반디 앤 루니스, 영풍문고, 요새는 알라딘 중고서점까지. 도서관이라고 다르진 않다. 많은 양의 책을 욱여넣기 위해 답은 하나다. 책장을 벽처럼 세우는 것. 그래서 많은 서점들은 하나의 답만을 쫓아왔다. 가지런히 규칙적으로 서 있는 책장들은 공간을 나누고, 가르고, 폐쇄적으로 만든다. 효율을 위해 많은 것을 가로막는다.

최인아 책방에 들어서자, 높은 책장을 배경으로 한 하나의 공간이 금세 읽혔다. 높은 층고와 큰 창문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이 어우러져 마치 공간 안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커피 향이 살짝 코끝을 스쳤다. 아, 독서를 위해 하나가 된 장소였다.

일차적으로 이런 공간 구성이 가능하게 된 것은 덜어냈기 때문이다. 최인아 서점은 개인의 큐레이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서점.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책을 가져놓아야 된다는 부담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추천 책들을 볼 수 있도록 몇 개의 큰 책상을 할애해 책들을 펼쳐놓았다.

그리고 높은 층고를 활용해 복층으로 구성되었다. 회의실로 쓰이는 것 같은 공간을 하나 아래에 두고, 그 위로 올라가면 복층이다. 사람마다 원하는 층고에 대한 요구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높은 층고의 시원하게 트인 공간을 선호하고, 또 누군가는 층고가 낮고 작은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복층은 확연한 후자의 공간이다. 최인아 책방에서는 두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천장을 노출하고 구조를 드러내었다.

나에게 복층이 좋은 이유는 사실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화각을 선호하는 취향 때문에 나에게 복층은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다. 그 공간을 어떻게 쓰든 간에.

 
04 앤티크한 난간과 조명이 용서되는 장소

고백하겠다. 나는 꼬불꼬불한 모든 것들이 싫다. 곡선이 존재해야만 한다면, 곡률이 다양한 것이 싫다. 각이 딱딱 맞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것은 나의 취향이고, 일부는 직업병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나는 꼬불꼬불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난간과 조명을 원래 싫어한다. 샹들리에는 대개의 경우 최악이다.

그런데 최인아 책방의 난간과 조명이 날 괴롭히지 않는다. 난간은 구불구불하고, 조명은 고풍스럽다. 그런데 역시 책의 힘인가 보다. 괜찮게 보인다.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오직 바닥과 벽과 천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건축가의 오만이다. 건축이 인지되는 방식은 오히려 그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에 크게 좌지우지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확신할 수 없지만, 나의 경우 공간 안에 책이 가득 담겨있다면, 일단 8할 이상은 성공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보수동 책방 골목이 부산에서 손꼽히는 출사지인 것을 보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책의 기운이 나의 조명과 난간에 대한 불호를 억누르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이 글은 오직 공간을 위주로 쓰기 때문에 최인아 책방이 콘텐츠로서 다른 책방과 어떻게 구분되는지는 자세히 서술하지 않았다. 단지 알고 가야 할 것은 그곳에 있는 모든 책은 최인아 본인 또는 지인의 추천으로 그곳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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