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숨이 지나가는 곳

도시의 숨이 지나가는 곳

교토로 가기 전, 나는 어김없이 여행 책을 한 권 샀다. 요즘 시대에 누가 책을 읽으면서 여행 계획을 짜냐고 묻는다면, 내가 그렇다. 인터넷에서 밀려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는 재빠르게 헤엄을 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장소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그 장소에 대한 책들을 꼬박꼬박 샀다. 때로는 사진집이었고, 여행서적이었고, 수필이었으며, 잡지이기도 했다. 책 속에 담긴 지도와 정보들로 도시를 한 번 훑고 비행기에서 내려야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교토는 오래된 도시지만, 작은 도시이기도 해서 보통 여행자들은 오사카와 교토를 묶어서 돌아본다. 그래서 교토만을 다룬 책이 적어 선택지가 몇 개 되지 않았다. 한 손에는 교토 책을 들고, 한 손에는 마우스로 구글 맵에 별표를 찍어가며 몇 군데 가보고 싶은 여행 장소를 정했다. 별표가 모이다 보면, 가야 할 동네가 정해진다. 내릴 지하철 역, 걸어야 할 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대개 여행할 때에는 하루에 한 동네씩 돌아보는 편이다.

여행 책에도, 몇 번 들어가 봤던 블로그의 추천 여행지에도 카모가와 강변은 없었다. 아예 없진 않았겠지만, 다른 관광지에 비하면 턱없이 정보가 없었다. 책 안에는 주구장창 신사(神社)들만 소개하고 있었다. 신사들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책 구석에 작게 실린 사진 한 장을 보고 카모가와 강변에 들러보기로 했다. 옛 가옥이 줄지어 나란히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01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의 너비

도시의 형성 과정에 강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모두 4대 문명이 강을 옆에 두고 발생했다는 것을 역사 시간에 배워 알고 있다. 물론 도시에게 있어 강은 물을 쉽게 구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겠지만, 상하수도 시설이 발달한 지금도 강은 아직도 도시에게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제공한다. 나날이 빽빽하게 들어서는 도시의 건물들 사이로, 숨 쉴 구멍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바람이 지나는 통로다.

강을 사이에 두고, 다리로 연결된 강은 건너기에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한강은 세계의 여느 도시와 비교해봐도 월등히 넓어서, 강을 걸어서 건너야 겠다는 생각이 쉬이 들지 않는 반면 카모가와 강에서는 몇 번이고 다리를 걸어서 지나기에 무리가 없다. 카모가와 강변의 너비는 보도까지 통틀어 100m도 채 되지 않는 반면, 한강의 너비는 1km 내외다. 이동 수단이 사람의 다리에서 자동차의 바퀴로 바뀔 만한 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모가와 강변에서는 앉아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동쪽으로는 가게들이 많이 자리 잡은 상업 거리인 기온이, 서쪽으로는 교토의 부엌이라고 불리는 니시키 시장이 있으니 간단한 음식을 포장해 온 사람들도 많다.

특히 가을이라 강변을 따라 쭉 늘어선 단풍과 은행나무의 빛깔들이 아름다워, 해외에서 찾아온 관광객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이곳을 많이 찾았다. 50m 내외의 강폭은 건너편의 도시를 하나의 풍경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 바람에 흩날리는 붉고 노란 잎들,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이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카모가와 강에서 사람들을 계속 머물면서 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벤치나 평상이 아니라 보도의 너비다. 수(水) 공간 옆에 자리 잡은 보도에 대해서는 지난 포스팅에서 한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청계천 옆의 보도가 너무 좁다고 한 번 이야기했었다. 그에 비하면 카모가와 강변의 보도는 꽤 넓다. 강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피크닉을 시작해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넉넉한 너비는 사람들이 부담을 갖지 않고 쉬게 한다.

한강에 있는 많은 벤치들과 큰 운동장에 비하면 시설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고,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넉넉한 보도가, 그 옆에 자리한 자그마한 잔디밭이 사람들에게 휴식처가 된다. 사람들을 머물게 하는 것은 공공시설이 아니라 스케일(scale)이 아닐까. 무조건 넓은 공간을 제공하는 공공디자인은 답이 아니다. 사람들은 넓은 공간을 좋아하는 듯 하지만, 또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굳이 텐트를 쳐 놓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02 세월을 지나온 가옥들

카모가와 강변의 재미있는 점은 동쪽과 서쪽의 풍경이 아예 다르다는 점이다. 강변의 동쪽에는 옛 가옥들이 그대로 늘어서 있고, 서쪽은 도심의 모습이 나무 뒤쪽으로 펼쳐진다. 서쪽에는 오히려 많은 가로수들이 풍경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을에는 그 풍경의 대비가 도드라진다. 고즈넉한 옛 분위기를 간직한 동쪽과 화려한 색깔로 물든 서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카모가와 강변을 찾게 만들었던 것은 꼭 붙어서 늘어서 있는 옛 가옥들이었는데, 그러한 풍경은 항상 나에겐 건축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오곤 한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맞벽 건축은 보기 드물다. 법적으로 아예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조건에 따라 허가가 이루어진다. 기본적으로 건물 사이에는 어느 정도 틈을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맞벽 건축이 보편화되어 있는 유럽에 방문할 때면, 파사드(입면, 건물의 얼굴) 사진을 엄청 많이 찍어오곤 했다. 그런데 교토에서는 심지어 옛 가옥이 거의 틈을 주지 않고 붙어 서서 시선을 끈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들이 늘어서자 왜 교토가 천년의 도시라고 아직까지도 불리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신사가 많아서가 아니라, 도심 안에서도 유지되고 있는 옛 풍경들이 있었다. 비록 불편하고 낡아도 쉽사리 무언가를 바꾸려 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성정 또한 느껴진다.

 
03 지나가는 사람들

카모가와 강변을 채우는 것은 옛 가옥들도, 가을을 맞아 한껏 멋을 부린 나무들도 아니다. 이곳엔 지나다니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도 종종 있었고 출퇴근 길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일상의 거리로 이용되고 있었다.

유진 코스 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깅코스는 교토의 가모가와 강변길이다. 교토에 갈 때마다 이른 아침 시간에 그곳을 달린다. 단골 숙소가 있는 미이케 근처에서 가미가모까지 달려갔다 온다. 그러면 대략 10킬로미터. 그사이 스쳐가는 다리의 이름도 모두 외워버렸다.

─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무라카미 하루키

자꾸 한강과 비교해서 한강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지만, 한강을 출퇴근길로 사용하지 못하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 한강 근처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서 특히 그렇다. 한강은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 도로에서부터 한강에 이르기까지 그 길이가 깊어 한강을 통하게 되면 꽤 많은 거리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지나다니는 길이 되기는 어렵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이상.

혹시 다음에 교토를 갈 기회가 다시 한번 생긴다면, 카모가와 강변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걸어보는 것이 1순위 여행 코스다. 교토에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깊이 생각하지 않고 풍경을 즐기고 느린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 이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교토의 고즈넉한 풍경과 은행과 단풍을 지척에 두고 질릴 때까지 산책해보는 것은 어떨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에 의하면, 10km 정도 된다고.

높고 푸른 대나무 숲을 걸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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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을 가로지르는 푸른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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