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식혀주는 판타지

머리를 식혀주는 판타지

근 1년 간 리디북스에서 전자책을 구매해 읽어 가며 독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리디북스에서 페이퍼라는 이름의 이북리더기를 구매한 후로는 완전히 독서의 95% 이상은 페이퍼를 이용하고 있다. 나머지 5%는 전공 관련 서적이 이북 시장에 흔치 않기 때문이고, 이북리더기는 컬러를 지원하지 않아 이미지를 보는 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건축 책과 사진집은 종이로 읽고 있다.

일본에서 유학 중인 동생과 나는 한 아이디를 공유하고 있는데, 아니, 사실은 내 아이디를 동생이 가끔 빌려 쓰고 있는데 어느 날은 캐시가 부족해서 책을 살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 캐시를 충전해달라는 카톡이었다.

"언니, 캐시 좀 충전해 줘."
"내가 책을 너무 많이 사버려서, 있던 캐시를 다 써버렸지 뭐야. 금방 충전해 줄게."
"책을 많이 샀네!"
"응, 일하기 싫을 때마다 샀더니 이렇게 됐어."

학창 시절의 시험기간에 뉴스마저 재밌어 보이는 것처럼 회사에 앉아 근무를 하다 보면 책이 얼마나 재밌어 보이는지 모른다. 전자책이란 것이 언제 어디서든 사이트에 접속하기만 하면 쉽게 구매 및 다운로드를 할 수 있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책을 구매하고 있다. 특히 일하기 싫을 때, 회사에서 지루함을 느낄 때 리디북스에 들어가 새로운 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구경한다. 이제 가지고 있는 전자책은 100권을 넘어섰다.

"언니도 일하기 싫을 때가 있어? 난 언니가 일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언니도 네가 공부하기 싫은 만큼 일하기가 싫어."
"헐. 그렇게나 하기 싫어?"

공부하기 싫은 만큼 일을 하기 싫다고 했더니, 동생은 격한 공감을 해줬다. 사실 노는 것과 비교한다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회사 일로 머리가 복잡할 때, 내가 사서 읽는 책은 역시 소설이다. 가볍고, 고민할 거리가 많지 않은 소설로 머리를 식히는 것을 선호한다. 에세이들은 가볍기도 하지만, 때로는 깊은 고민의 여지를 남기기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때에는 찾게 되질 않는다. 같은 전공의 책들은 하루 종일 그 일로 씨름을 하고 왔는데 또다시 손을 대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쉬고 싶을 때 자기계발서 같은 쪽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읽을거리를 찾을 때, 그리고 그것을 소설의 영역에서 탐색할 때에는 역시 미국 소설이 정답이다. 친구에게 장난스레 나는 미국 감성 책들이 취향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 소설들은 망설이지 않고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경향이 있다. 미국 소설뿐 아니라 미국 드라마도 대체로 그러하다. 범인은 정해져 있고, 그 범인을 찾아 나서는 과정은 클리어하다. 고민의 여지가 없다. 힌트들을 하나씩 발견하다 보면 그 끝에는 범인이 잡히고, 엔딩을 맞는다. 요리조리 봐도 나쁜 범인이 잡힌 것뿐이다. 불쌍한 사연들로 구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나쁜 일들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범인에게 공감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는다. 이 부분이 아마 미국 소설의 판타지일 것이다. 실제로는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처음부터 나쁜 사람도 없는데, 마치 원래부터 나쁜 놈이었던 범인을 잡아 세계평화가 온 것처럼 소설을 끝맺는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도 가볍게 읽기 위해 구매했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니, 범인을 작은 단서들을 종합해 생각지도 못한 논리를 전개해서 멋지게 잡을 것 같은 제목이었다. 책을 펼친 순간, 모든 것을 기억하는 주인공의 부러운 능력보다 더 먼저 주인공의 불행을 먼저 목격하게 된다. 이 소설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부러운 능력 위에 주인공의 불행을 얹어 소설의 무게를 맞춘다.

소설이 꽤 길다. 모든 것을 기억해서, 순식간에 범인을 잡을 줄 알았던 주인공은 많은 시련을 겪는다. 범인을 잡는 일련의 과정들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이 소설이 가진 특유의 흡입력 덕분이다.

나는 놀기 위해 태어났다

나는 놀기 위해 태어났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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