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공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공간

여행은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지닐 테지만, 내게는 보통 세상 밖을 돌아보는 것을 뜻했다. 사진을 찍으러 다녔고, 건축을 보고 배우러 다녔다. 가족들과는 다양하고 멋진 곳에서 많은 일들을 했다. 우리 가족은 활동적인 편이었고, 수영을 하거나 래프팅을 하거나 스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숙소에 돌아오면, 피곤해 금세 곯아떨어졌다. 나에게 여행이란 그런 긴박한 맛이 있는 무언가였다.

바쁘고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여행을 하는 나에게 게스트하우스는 당연히 저렴한 숙박시설로서의 의미가 아니었을 리 없다. 하루 2, 3만 원에 내가 몸을 뉘일 침대가 제공되고 비록 공용이더라도 씻을 샤워실이 있다는 것은 나에겐 큰 메리트여서 어딘가로 떠나기 전에는 어떤 게스트하우스가 있나 먼저 알아보게 되었다. 난 다른 사람들과 있어도, TV가 켜져 있어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도 언제나 잠을 자는 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조금 더 좋은 숙소를 알아보게 된 것은 사실 건축적인 욕심에서였다. 이왕 묵을 것, 좋은 숙소에서 좋은 영감을 받고, 답사도 되고 여행도 되면 1석 2조일 테니까. 헤이리의 모티프원이 그러했고, 종로의 메이커스 호텔이 그러했고, 강릉의 씨마크 호텔이 그러했다. 많은 것을 보고 싶어서,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나도 나중에 쓰고 싶어서 그쪽으로 떠날 것을 정했었다. 그래서 페이스북을 보고, 인스타 피드를 내리는 것처럼 스테이폴리오에 들어가서 어디가 괜찮게 지어졌나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러던 9월 말, 우리에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작업들과 일상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취직을 하고 나서 7개월이 넘어가고 있었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떠날 바로 그날은 우리 셋 모두의 마감날이었다. 하루 24시간은 쪼개지고 채워져서, 앞으로 내달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날들이 며칠 이어졌다. 언제나 마감이란 그런 것이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끝냈나 싶은 것.

그러니까 건축이고 인테리어고 사진이고 뭐고, 그냥 가만히 있을 곳이 필요했다. 내 기준이 나의 작업에서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나는 그저 편한 옷을 입고 등을 기댄 채 잔뜩 책을 읽고 싶었고, 영화를 두세 편은 연달아 보고 싶었고, 맑은 공기를 들이켜고 내쉬고 싶었다. 내 일상을 옆으로 쓱 다 밀어 두고 내가 웅크리고 힘을 되찾을 충전시간이 필요했다. 그 모든 것들은 딱 모두의 별장을 가리켰다.

 

모두의 별장은 사실 다른 여느 게스트하우스와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라 함은 보통 큰 관광지를 찾는 여행객들의 숙소이겠지만, 강화도는 관광지가 아닐뿐더러 사실 말근육을 닮은 고구마가 쑥쑥 나는 시골이다. 그래서 모두의 별장에서 시작되는 여행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수밖에 없다. 책 속이거나, 영화 속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말해주는 이야기 속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2박 3일 동안 모두의 별장에 묵기로 하고,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생산병이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느끼는 병이었다. 책을 잔뜩 챙겼고, 영화를 몇 편씩 가져갔고, 어깨가 부러지도록 술도 챙겼다. 우리는 순진하게도 그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룬 것은 결국 술밖에 없었고, 책은 한 챕터도 못 읽었으며 영화는 가진 것의 반도 못 봤다. (영화는 7편 정도 있었고, 그중 2개 보았으니 선방했다.) 대신 이야기를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무척 많이 나누었고, 실컷 누워있었고, 아주 오랜만에 요리를 해 먹었고, 마트에 다녀오느라고 1시간은 족히 걸었고, 모두의 별장을 지키는 그냥이의 팬이 되었다.

많은 것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모두의 별장은 충분히 살펴보고 돌아올 수 있었는데, 모두의 별장에 대하여 3가지 정도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설명하려고 한다.

 
01 ㄷ자 형의 마당, 마당 중심의 기다란 식탁

한옥을 고쳐서 사용하는 모두의 별장은 총 3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건물은 마당을 바라보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결국 마당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로 귀결된다. 테이블은 마당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밖으로 나오게 하고, 옆자리에 앉게 하고, 함께 밥을 먹게 한다.

예전에 공동주택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방을 중심으로 하는 커뮤니티를 기본 개념으로 설계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또한 일본의 공동주택 사례를 보면서 같이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커뮤니티의 주요 행위라는 것도 배운 적이 있었다. 애초에 친구라는 의미의 영어단어인 'companion' 은 밥을 함께 먹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나와 밥을 먹을 수 있는 식탁이 있는 것은 굉장히 큰 힘을 가진다. 아마 다른 많은 게스트하우스들이 그저 숙박업소 정도의 역할밖에 못하게 되곤 하는 것은 바로 큰 식탁의 부재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른 식사를 때우듯 먹고 각자의 침대로 향하게 하는 비좁은 주방이라면, 사람들은 그곳에 더 이상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다. 

 
02 마당과 이어져 또 다른 식탁을 중심으로 하는 모두의 본채

바깥 마당 중심에 식탁이 있었다면, 내부에도 더욱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식탁이 존재한다. 본채의 중심이고, 그 말은 즉 모든 방이 이 식탁을 중심으로 둘러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외부의 식탁과 내부의 식탁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모두의 별장을 이루는 중심 공간 개념은 분명 식탁이다.

본채 안에서는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 건축가가 공간을 디자인한다면 못할 일들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천장에는 천이 매달려 있고, 문 대신 천이 문 역할을 대신하고, 이곳저곳에서 조명들이 빛나고 있고, 갖가지 물건들이 어딘가에 매달려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식탁의 면적을 반 이상 차지하고 있는 식물들인데, 식물의 힘이란 것이 대단해서 그것이 공간에 큰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식탁 위의 식물들이 담겨 있는 화분은 모두 술병이고, 식물들의 잎사귀는 모히또를 주문한다면 바로 그 모히또에 희생양으로 쓰인다. 술과 식물들이 무언가 공생관계 같은 것을 이루고 있다.

식탁이 중요시된다는 것은 즉 음식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과 같다. 주방의 중요도가 매우 크다는 뜻이다. 주방은 이곳에 묵는 게스트들이라면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했는데, 직접 짠 선반들에 가지런히 그릇들이 올려놓아져 있었고, 요리 공간을 넓혀주기 위해서 테이블을 가져다 놓아 요새 한창 많이들 쓰는 ㄷ자형 주방이 완성되었다. 주방 싱크대 위의 간접 조명이 주방을 아주 화사하게 바꿔놓았다. 모두의 별장 홈페이지나 스테이폴리오에 들어가면 모두의 별장이 고쳐지는 사진들을 몇 장 구경할 수 있는데, 주방이 아마 가장 큰 변화를 겪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03 직접 만든 나무 가구들

건축가인 아버지를 두고, 20대 때부터 목수 일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조한비 대표는 모두의 별장 건물 전부를 초저예산으로 직접 고쳤다. 그래서인지 모두의 별장 안에 있는 자그마한 손잡이 하나까지도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현장에서 배우지 않은 건축가는 못할 인테리어라는 생각을 2박 3일 내내 하게 되었다. 사실 조금 반성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기성재를 사서 들여놔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세면대를 고르기 위해 대림바스 홈페이지에서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고, 문 손잡이와 조명도 쇼핑몰에 들어가서 물건 보듯이 골랐다.

오히려 모두의 별장에는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부분이 많다. 나무가 물에 취약하기 때문에 잘 쓰지 않는 주방과 화장실에 과감하게 나무로 마감을 하고, 탑볼을 양은으로 만들어버리고, 손잡이가 없어 불편한 미닫이 문에는 직접 나무를 잘라 박아버렸다. 물론 침대들과 소파, 식탁도 직접 제작하였다. 특히 나무 파렛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모습이 눈에 띄는데, 경제적이고 구조적으로 튼튼하기 때문이다. 다루기도 어렵지 않고.

패브릭을 사용하는 것도 그의 눈에 띄는 개성 중 하나다. 마당에 빨래처럼 걸려있는 패브릭들은 건물 바깥으로 연결되는 마당과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마당을 한 번 구분 지어주는 역할을 하고, 문 앞에 걸려있는 패브릭은 문보다 더 문 역할을 하고 있고, 커튼은 집게로 간단히 고정시킨 천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독채에는 바닥 마감 자체가 패브릭 몇 장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패브릭의 활용도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었는데, 건축의 요소로 천을 생각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2박 3일 동안 머물렀던 독채의 사진 몇 장 더.

아무 생각 없이 빔 프로젝터만 달랑 들고 갔는데, 생각보다 여유가 있는 흰 벽이 없어서 바닥에 깔려있던 흰 천을 문 쪽에 매달아버렸다. 그랬더니 훌륭한 스크린이 되어주었는데, 앞으로 빔 프로젝터를 챙길 때 흰 천도 같이 가지고 다녀야겠다. 영화는 독채를 예약하는 중요한 이유인 것 같다.

음식을 찍었던 것이지만, 바닥을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어서 이 사진으로 대체한다. 본채를 장식하고 있는 현란한 발리산 천들도, 독채에 쓰인 무지 천들도 모두 독특한 느낌이 있다. 

본채뿐 아니라 독채에도 주방이 있다. 본채의 주방과 마찬가지로 싱크대 위에 나무 선반이 걸렸고, 그 뒤의 벽이 페인트로 마무리되었다. 보통 간접 조명으로 쓰이는 T5는 대놓고 노출되었는데, 느낌은 좋다. 이곳도 식물과 술의 공생관계가 보인다.

 

모두의 별장을 더 알고 싶거나, 예약하고 싶다면 http://www.mobyul.org/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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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치트키 콜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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