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날것의 카페

세상 날것의 카페

건축은 사람을 많이 닮아있다. 구조라는 뼈대를 기초로 삼아 이 땅위에 서있고, 사람이 옷을 입듯 건물도 마감재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치장한다. 아프면 치료하듯이, 군데군데가 망가지면 고친다. 사람으로 치면 직업에 해당하는 용도도 다양하게 변하곤 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늙어 간다.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보여주는 건물이 성수동에 생겼다.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자신의 나이테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카페 onion의 이야기다.

노숀이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며 약속 장소를 성수동으로 정했다. 가보고 싶다는 곳은 리사르 커피로스터스에 이어 두 번째였다. 그날은 양파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의 오픈날이었다. 패브리커가 이번에 새로 작업한 곳이라 했다.

패브리커가 누군지, 인테리어는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하는 채로 성수역 2번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성수동 인근의 공장은 대체로 벽돌 마감인 곳이 많지만, 큰 유리창을 전면에 내세운 곳은 없다. 공장을 리모델링한 곳이었다.

 
01 노출증의 끝

요새 '핫플'로 인스타그램을 장악하고 있는 카페들은 공통점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신축이 아닌, 옛 건물을 활용한 리모델링 공간인 것(a). 리모델링을 하되, 마감재를 뜯어내어 공간의 구조를 보이게 한 것(b). 친구들과 나는 이러한 리모델링의 유행을 장난스레 노출증이라 부르고 있다. 신발 공장을 고쳐 카페로 만든 합정동의 앤트러사이트를 시작으로 제주 앤트러사이트, 한남동 앤트러사이트, 그리고 요새 들어 핫한 성수동의 대림창고와 오르에르까지 모두 노출증에 걸려있다.

 a. 재료를 노출하는 것은 역시 안도 타다오부터이지 않았을까. 구조적 역할을 하는 콘크리트를 노출시켜 건축을 마감 없이 그대로 날것으로 만들어 내었다. 어떻게 하면 화려한 옷을 입을까 고민했던 근대 이전의 건축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건축의 뼈대를 그대로 드러낼 수 있구나.' 그제야 인류는 잊고 있었던 건축 양식을 다시 깨달은 것이다. 그 이후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하나의 양식처럼 굳어졌다.

b. 옛 건물을 다시 쓰는 일은 시작을 무엇이라고 꼬집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례가 많다.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례라고 한다면 미술관으로 변신한 공장, 런던의 테이트 모던 정도가 되겠다. 건물을 upcycling이니, regeneration이니 많은 이름을 붙여가며 새로 살려 쓰는 것은 요새 서울에서도 아주 흔히 보인다. 단, 그 시간의 흔적들을 모조리 싹 지우고 새로운 얼굴로 나타나는 것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전혀 다른 프로그램으로 다시 쓰는 공간(a)에서 마감을 다 뜯어서 노출(b)한다면, 그것을 노출증(a+b)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여기, onion은 내가 본 노출증 중에 중증, 노출증의 끝이다.

오래된 타일, 뜯기고 갈라진 페인트, 그대로 드러나버린 콘크리트. 

원래는 공사 중인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폐가에 플래시를 켜고 들어가야만 그것들을 한 군데에서 볼 수 있었다. 더럽고 무서운 것들이다. 그런데 멋들어진 통유리창이 들어오고, 미니멀한 조명이 달리고, 깔끔한 가구가 더해져 카페로 탈바꿈되니 손님들도 무섭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래된 45 사이즈의 타일이 외부 마감에도 붙어있다. 요새는 화장실에서 자주 쓰이는 타일이 예전에는 외부 마감으로도 쓰였던 것 같다. 사실 타일도 잘 쓰면 예쁘다는 것을 요새 일을 하면서 배운다. 그저 내가 본 타일들이 제대로 디자인이 되지 않아서 예쁘지 않다는 고정관념이 생겼었나 보다.

onion은 두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로에 면하고 있는 입구 쪽의 건물은 커피를 주문하고 잠시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벤치형의 의자만 구획되어 있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벽면은 구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블럭과 그 위를 덮은 미장 페인트들이 벗겨진 것이 그대로 보인다. 한 때에는 창문을 뚫으려 했다가 막은 것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

 
02 이름처럼 양파 같은 공간

카페는 아주 단순한 공간의 위계를 가진다. 그러니까 카페는 상업시설 중에서도 매우 자유로운 평면의 구성이 가능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공간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된다. 구획하자면, 단 두 개의 방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이곳은 그렇지가 않다. 진입 건물을 통과해 마당을 지나고 나면 잘게 쪼개어진 공간들의 집합체를 만나게 된다. 필요에 따라 조금씩 확장한 공간들이 모여 다양한 크기의 방을 만들었다. 방들이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 꼭 양파와 같다. 공간이 양파라는 이름과 썩 어울린다.

벽을 지나, 계단을 올라, 다시 문을 통과할 수 있다. 이것을 건축에서는 레이어, 한글로는 켜라고 부른다.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에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보통 한옥이 그렇다. 

곳곳에 꼭 통로가 아니더라도 구멍이 뚫려있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창이다.

개인적으로 onion에서 찍은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많은 프레임들을 찾을 수 있다. 타일의 정사각형과 창문의 정사각형,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창문의 정사각형까지. 그리고 역시나 그 안을 채우는 것은 사람이다. 

재밌는 구조인 것이, 중정도 아니고 내부도 아닌 빈 공간이 건물 가운데 떡 하니 놓여 있다. 이 때문에 공간의 한 켜가 더 생겨나고 마치 건물이 두 채가 아니라 세 채인 것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아직까지는 쓰임이 없지만, 무엇으로든 쓸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공간이다.

건물 사이의 마당. 1층은 내부가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옥상으로 올라가면 연결되어 있다. 브리지 하나만 올려져 있기 때문에 건물은 두 채라고 불러야 맞지 않을까 싶다. 법적으로는 증축을 거듭한 것이기 때문에 한 채일 수 있다.

마당에 위치한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서면 옥상이 나온다. 요새는 루프탑이라고 더 자주 불리는 곳이다. 의자를 놓고, 테이블을 놓아 야외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해놨다. 

왼쪽 사진에 보이는 옥탑방은 원래 어느 공장의 관리사무소로 사용되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 간판을 그대로 단 채로 베이커리를 운영 중이다.

 
03 깨끗한 천장

보통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천장에는 많은 것들이 붙어있다. 조명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가 들어간다. 천장 도면을 그릴 때면 평면 못지않게 복잡해진다. 조명을 달아야 하고, 에어컨을 달아야 하고,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고, 디퓨저를 넣어야 하고, 때로 필요하다면 CCTV도 천장에 설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들의 염원은 천장을 깨끗하게 하는 것인데, 사실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천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설비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역시 그래도 벽보다는 천장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천장에 있는 모든 설비들을 숨기는 방법이 있다. 그것 또한 쉽지는 않다.

onion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그래서 천장이다.

onion에 들어가자마자 노숀에게 물었다. 천장, 이거 뭐냐고. 노숀은 바리솔이라고 했다. 그 이후 소장님과 함께 왔을 땐 바리솔이 싸지 않다고 했다. 이 정도 규모면 비싸게 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격을 떠나서 흰 바리솔로 천장을 모두 뒤덮고 나니 공간은 더욱 강력해졌다. 사진이 마이너스의 예술이듯 가끔씩 건축은 무언가를 덜어낼 때 더 뚜렷해진다. 천장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했는지, 그래도 천장 면적을 조금 나누는 편이 더 좋다고 판단했는지, 보를 드러냈다. 좋은 선택 같이 보인다. 보가 있어서 바리솔로 덮인 면적의 천장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낮보다 밤에 더 붕 뜬 느낌이다. 천장 때문에 onion은 더 이상 옛 건물스럽지가 않다. 

onion 내부를 빙빙 돌아다니다가 한참 후에야 밖으로 나올 때였다. 두 번째 방문이었고, 낮이었다. 햇빛은 그대로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창문은 유리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장과 같은 재료처럼 보였다. 햇빛이 반쯤 들어와 조명처럼 빛났지만, 바깥이 보이지 않았다. 흰색이었다. 다만 바깥의 나무 그림자가 비쳐서 캔버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흰 캔버스 위에서 나무 그림자가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바깥으로 나와서 다시 확인했다. 의도한 것처럼 보인다. 아, 입을 벌렸다. 이것이 의도한 것이라면, 박수를 금할 길이 없다. 바리솔 창으로 들어오는 나무의 그림자를 액자처럼 내부에 걸어놓은 것이 계획의 일부였을까.

 
04 건축 속으로 파고든 가구

말하자면, 건축과 가구는 형제 같은 사이지 않을까. 건축이 큰 형이라면, 건축은 말괄량이 동생쯤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둘은 구분되지만, 결국 한 공간에 놓인다. 사람의 크기가 기준이라는 점에서 핏줄은 하나지만 다른 성격을 가진다. 건축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가구는 옮길 수 있는 이동성을 가지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onion은 샴쌍둥이쯤 되나 보다. 둘이 하나로 붙어있다. 건축 안에 가구가 파고들었다. 과감한 선택이었다. 건축보다는 예술을 기반으로 한 그룹이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콘크리트로 탁자와 의자를 짰다. 두껍고 육중한 형태를 그대로 들어 올려 노출시켰다. 같은 어휘를 가지고 테이블과 소파가 짜였다. 이제 그것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가구의 특성 중 이동성이 사라졌다.

거푸집을 짜고, 콘크리트를 붓기 전에 콘센트를 집어넣었다. 혹시라도 멀티탭이 망가지면 어쩌나 걱정이긴 하지만, 현재는 멋지다. 부엌에서 자주 쓰는 제품인데, 꾹 누르면 콘센트가 뿅 하고 올라온다. 노트북 유저들이 아주 선호할 만한 곳이다. 사실 첫 방문 이후, 회사 사람들과 함께 방문했었는데 이곳은 모조리 맥북 유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누가 보면 짜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 애플이었다.

콘크리트 테이블은 옆 방으로 그대로 확장된다.  onion에서는 공간의 한계를 넘어 확장되는 가구를 두 군데서 발견할 수 있는데, 위의 사진이 그 첫 번째고 아래의 사진이 그 두 번째다. 첫 번째 테이블이 방과 방을 넘어가는 가구였다면, 두 번째 테이블은 안과 밖을 넘나 든다.

노출증에 걸린 공간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onion은 한 번쯤 경험하기 좋은 장소다.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은 대림창고보다 이곳이 더 좋다고 말했지만, 나는 대림창고 쪽을 더 선호한다. 아마도 잘게 쪼개어진 공간에서 느끼는 아늑함과 뻥 뚫린 공간의 개방감 사이에서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느냐의 차이이지 않을까.


네이버 지도에서 찾은 onion 건물의 옛 사진. 지금과 비교해보면 매우 흥미롭다.

 

Fabrikr가 올린 이미지와 글이다. 글은 내가 직접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onion 어딘가에 붙어있다고.

<onion>

DESIGN 패브리커(Fabrikr)
DIMENSION 759 ㎡
DATE 2016

이 공간은 1970년대에 처음 지어졌다. 그리고 5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슈퍼, 식당, 가정집, 정비소, 그리고 공장으로 변형되었다. 때마다 필요에 따라 쓸모없는 부분은 부서졌고, 더해져야 할 부분은 주먹구구식으로 증축되었다. 심미성보다는 활용성을 중심으로 변화한 공간이기에 시간과 함께 공간의 본모습은 점점 사라져 갔다. 

우리는 공간을 탐색하던 중, 과거의 구조 속에서 새것이 줄 수 없는 가치를 발견했다. 바닥에 묻은 페인트 자국, 덧대어진 벽돌 하나하나가 세월을 기억하는 훌륭한 소재였다. 우리는 이 모든 흔적을 살리며 과거의 공간을 다시 재생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과거의 공간이자 동시대적인 공간으로서의 재해석이 필요했다. 

ONION은 분리된 것 같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존중하고, 사용자의 기능을 고려해 신중하게 추가된 소재들로 만들어졌다. 가구 또한 공간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건축적인 요소를 더해 제작되었다. 함께 공존하는 식물들도 이곳에 늘 있었던 것처럼 익숙한 모습으로 자리해 있다. 

이 공간은 앞으로도 마음을 정화시키는 휴식과 서비스가 존재하는 곳이 될 것이며, 공간을 찾는 이들의 머릿속 소음을 잠재워 줄 안식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의 영감을, 누군가에게는 온전한 휴식을 선사하는 곳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_Fabrikr
 

Fabrikr의 작품들을 더 감상하고 싶다면, http://www.fabrikr.com/

Fabrikr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fabrikr/

사랑이 삶이 된 이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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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유심히, 자세히 바라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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