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01 1970년대의 신여성

나는 일본어를 1년이 넘도록 배우고, 일본어 능력시험을 2급까지 쳤는데도 아직도 일본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은 너무 어렵다. 학창 시절 만화책을 항상 끼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외하면 외우고 있는 일본 작가의 이름이 아예 전무하다. 심지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다나베 세이코라고 적혀 있는 작가의 소개란을 보고도 아무런 정보를 떠올리지 못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작가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있었지만, 그 책 또는 영화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오로지 제목이 발칙해서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서였다.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내용을 읽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1/10 쯤 읽었을 때 읽기가 불편하다고 느꼈다. 남녀 담론 에세이라고 하나 굉장히 남성우월주의적인 성향을 보였고, 남자와 여자를 편협한 사고로 정의 내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남자의 본능은 원래 그렇고, 여자는 이럴 때 행복함을 느낀다고 재단한 내용들. 다나베 세이코 작가의 팬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있는 책이었다. 이 작가는 누구길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나 궁금해서 읽던 책을 접고 검색에 돌입했다. 다나베 세이코. 1920년대 생. 우리 할머니보다 훨씬 언니다. 이 에세이들이 쓰인 것은 1970년대. 내가 어렸을 때는커녕 엄마, 아빠가 꼬꼬마였을 때다.

자,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니 조금 더 읽기가 쉬워졌다. 애초에 이 책의 초반에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음을 명시해줬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야 여성 인권을 막 찾기 시작한 시대의 이야기다. 지금의 세대에게는 너무 구닥다리의 사고방식이 그 당시에는 신개념처럼 받아들여졌음을 미리 알고 시작해야 옳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의 태동 정도로, 역사 정도로 바라봐야 맞다.

1970년보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누구든 성역할을 가장 먼저, 많이 배우는 곳은 바로 집 안이다. 가족은 가장 작은 사회이면서, 개인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다.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각자의 성역할을 학습한다. 그것은 하나의 사회화 과정이기도 하다. 최근 내가 겪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집 안에서 겪은 성역할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다.

 
02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다른 아빠는 가져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나의 아빠는 꼭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 메뉴는 상관이 없으니, 입에 넣을 수 있는 무엇이 항상 아침에 있어야 한다. 삼시 세 끼를 꼭 챙겨 먹는 사람이 나의 아빠다.

어느 날, 문득 아침을 너무나 맛있게 먹고 있는 아빠를 보자 궁금해져서 물었다.

"아빠. 엄마가 이제 아침 안 차려주겠다고 하면 어떡해?"
"안되지."
"아빠. 근데 나중에 내 남편이 나한테 아침 차려달라고 하면 어떡해?"
"배고프면 자기가 알아서 찾아 먹어야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엄마와 나는 한참을 웃었다. 아빠의 이중잣대는 분명 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하여 발생했을 것이다. 당신은 아내에게 아침을 얻어먹지만, 딸이 딴 남자에게 밥 차려주는 꼴은 못 보겠다는 딸바보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세대를 건너가는 성역할의 변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의 아빠들이 '넌 나중에 남편 밥을 차려줘야 한다'라고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의 성 역할이 변화해가는 것은 아닐는지.

 
03 너 같은 며느리는 안 받는다

한편, 밥은 여자가 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가장 나에게 강력하게 피력하는 사람은 나의 할머니다. 명절이 되면, 몇 년 전부터 뉴스에서만 들어왔던 질문을 나에게 던지신다. 결혼은 언제 하니? 아직도 남자 없니? 이런저런 이유로 얼버무리다가, 지난 추석 때에는 할머니에게 말하고야 말았다.

"할머니, 저 남편한테 밥 해주기 싫어요!"

나의 충격적 발언에 할머니는 약간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나 재밌니, 남편한테 밥 해주면?"
"재미없어요. 전 다 사 먹을 거예요!"

밥을 다 사 먹을 것이라는 나의 말이 할머니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나 사이에는 그만큼의 간극이 존재한다. 소위 세대차이라고 불리는 것.

"너 같은 며느리는 안 받는다!"

할머니는 선언하시고는 내가 있던 방을 나가버리시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엄마와 작은 엄마에게 나름의 통쾌함을 남겨준 모양인지, 그 후 나는 작은 엄마의 비밀스러운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04 남자 친구가 나중에 설거지 도와준대?

엄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에게 여자라서 뭔가를 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각종 로봇과 자동차들을 좋아했고, 엄마는 나의 취향을 적극 존중해주었다. 집안일을 여자이기 때문에 시킨다던지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남자 친구가 생기자, 그것도 연하의 남자 친구를 만나자 아들처럼 생각되는 모양인지 자꾸 이것저것을 묻는다.

"남자 친구가 나중에 설거지 도와준대?"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질문을 엄마가 나에게 했었다. 하지만 과연 남자 친구가 나의 설거지를 돕는다는 개념이 옳은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그건 역시 아닌 것 같아서 엄마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남자 친구가 설거지를 왜 도와? 애초에 그건 내 일이 아닌데. 같이 해야 할 일이지."

사실 그때엔 말하지 못했는데, 남자 친구는 왠지 모르겠지만 집안일을 나보다 더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 신남성인 모양이다.

 
05 나에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슬프게도 20대 후반에 들어서자, 어른들에게 더 강력한 성역할을 부여받는다. 명절 때는 특히나 가장 심하고, 평소에도 가족도 아닌 누군가에게 '이제 결혼해야지'라는 말을 무슨 격려처럼 듣는다. 놔두면 알아서 할 텐데도, 한국 사회는 그렇게 남의 일에 이런저런 충고를 건네어야 관심이 있는 것이 증명되는 것처럼 군다. 일단은 견디고 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다가 그냥 웃고 만다. 그러면서 어른들이 나와 얼마나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지 피부로 느낀다. 나도 나이로는 어른인데도.

세대가 다르다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것'의 차이일 것이다. 내게 당연한 것이 다른 나이의 사람에게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상식'이 변화하였음에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아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들도 20, 30년 후에는 아주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처럼 보일 것이다. 항상 시대가 변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시대가 변화할 때, '요새 애들은 글렀어' 식의 반응은 인류가 처음 글을 쓰던 그 순간부터 있었지만 오히려 '이게 새로움이란 것이구나' 받아들여야 하진 않을까. 난 나중에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머리를 식혀주는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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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목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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