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유심히, 자세히 바라보는 글

일상을 유심히, 자세히 바라보는 글

01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대학교 때, 두 번의 사진전을 기획했던 적이 있었다. 요새는 워낙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 어디를 가든지 카메라를 훌쩍 둘러 맨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아마 여러 사람들의 사진을 골라내고 묶어내고 살려내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보다 조금 더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진만큼 개인적인 취미는 매우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년 동안 서른 명 정도 되는 단체의 큐레이터였고, 디렉터였다.

전시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나에게는 마감이 있었고,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는 것은 나에겐 큰 부담이었다. 머릿속에는 여러 사람들의 사진들이 뒤엉켜 정리가 안 될 때가 많았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있었고, 나의 의사를 물어오는 말들이 있었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사진들이 준비되고 나서야 전시를 준비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전시를 준비함과 동시에 사진은 원본 상태로 나에게 왔다. 나는 때로 몇 백장의 사진 중에서 한 장을 건져내야 했고, 후보정을 거쳐야 했고, 다시 전시의 틀 안에 넣어야 했다.

여러 사람들이 내 맘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부담은 나에게 독이 되어,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날카로운 말들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고, 한번 물꼬를 튼 가시 돋친 말들은 걷잡을 수 없었다.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 '말의 무덤, 언총'에서

내가 뱉어낸 말들이 상대방에게로 가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독촉에 독촉을, 비난에 비난을 더해서 상대방에게 쏟아내고 난 후였다. 그런데 나는 벽에 대고 이야기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이의 마음에 생채기만 낸 채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억지로 내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없었다. 나는 가만히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종종 공백이란 게 필요하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다신 쉼표를 찍어야 한다.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 '제주도가 알려준 것들'에서

내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것을 당연히 알아채고 같이 노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내가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해서, 상대방이 순순히 밀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주 순진한 믿음이다. 상대방과의 협업은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려웠고,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

전시를 마친 이후의 대학교 생활 내내 나는 매 학기 팀플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렇게 호되게 겪은 사람들에 대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는지, 그 이후론 팀플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결정적 순간에 한 템포 쉬어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내가 있는 힘껏 날고뛰어봤자, 상대방까지 끌고 다닐 수는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02
그냥 불러봤어

"엄마."
"왜?"
"그냥 불러봤어."

종종 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씩 웃는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이따금씩 엄마, 아빠를 부르곤 그냥 불러봤다고 말했다. 아마 나에게서 등을 돌린 채 집안일을 하고 있는 엄마가, 집에서도 노트북에 머리를 파묻고 일을 하고 있는 아빠가 그 잠깐의 시간만이라도 나랑 눈을 맞추길 바랐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냥 한 번 걸어봤다'에서

요새는 나의 친구 '빔'이 날 자꾸 그냥 부른다. 한참을 급한 듯이 불러놓고선, 대답하면 그냥 불렀다고 대답한다. 그럴 때면 별일 아닌데도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 이유 없이 부르던 나의 습관이 친구에게도 옮은 모양이다.


브런치에서도 종종 보였던 이기주 작가의 글을 서점에서 만나 사서 읽게 되었다. 일상의 스쳐가는 순간들에 대한 단상들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 지나가는 계절, 우리가 보내고 있는 하루하루에 대한 글.

글도 순간을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좋은 글이 나온다. 사진도 그렇다. 하루가 지는 순간, 바뀌는 계절, 내옆을 스치는 바람을 놓치지 않고 들여다 보아야 좋은 사진을 찍는다. 그런 의미로 공통점이 느껴져 좋았던 책이다.

읽다 보니, 나도 나의 이야기들이 떠올라 옮겨 보았다.

세상 날것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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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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