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삶이 된 이후를 위하여

사랑이 삶이 된 이후를 위하여

01 사랑이 삶이 된 이후를 위하여

요새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없어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NS에는 새로 남자 친구, 여자 친구를 사귄 사람들이 사진을 일주일에도 몇 번씩 올리곤 했다. 첫 기념일을 어디에서 어떻게 맞았는지, 이번에는 또 어디로 데이트를 갔는지, 어떤 선물을 하고 어떤 선물을 또 받았는지, 나는 예고도 없이 그들의 연애사를 통보받곤 했다.

"어떤 점이 좋은 거야?"

난 짓궂게도 그렇게 묻곤 했는데, 어떤 후배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우린 너무 잘 맞아. 성격도 그렇고, 가치관도 비슷해. 정말 신기하게도 말이야."

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잘 맞아서 사귀기 시작하고, 성격차이를 이유로 헤어진다. 내가 그 후배에게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저 말을 똑같이 했었던 것 같다. 다들 똑같아서 사귀고, 달라서 헤어진다고. 그리고 얼마 뒤 그 후배는 그 여자와 이별했다.

다른 사람이 영혼의 짝이라는 느낌, 이 확신은 아주 순식간에 찾아올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다. 이름을 알 필요도 없다. 객관적 지식은 끼어들 틈이 없다. 대신에 중요한 건 직관, 즉 이성의 정상적 작용 과정을 건너뛰기에 더더욱 정확하고 존중할 가치가 있는 것만 같은 자발적 감정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거의 모든 드라마와 영화들은 두 남녀가 처음 만나 투닥거리며 싸우다 사랑에 빠져 서로 어긋난 타이밍을 넘고 넘어서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커플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그 서사구조를 벗어나는 영화와 드라마는 극히 일부인데, 최근에 내가 본 작품들이라고 하면 <연애의 온도>와 <그들이 사는 세상> 정도였던 것 같다. 좋은 작품이지만, 역시 크게 흥행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들을 계속해서 보길 원하고, 사랑이 지속되는 과정에는 별 흥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대리만족으로 해석되든, 아니든 관계없이.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02 당신의 남자 혹은 여자 친구는 완벽하지 않다

부끄럽지만, 옛 남자 친구는 나에게 단점 없이 완벽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부 혹은 농담이었냐고 묻는다면 아주 진지하게 말했기 때문에 아니라고 답할 것이고, 그 말에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졌냐고 묻는다면 100% 아니었다고 답할 수 있다. 오히려 나는 그의 마음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전혀 완벽에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나 말고, 나를 통해 상상 속의 존재를 만들어 놓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지금도 간혹 궁금해질 때가 있다.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자신이 결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상대방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은 나의 추악한 면들이 그 사람에게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까지 상대방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을 찾지 못하였고, 당신의 투정을 끝없이 받아주는 보살처럼 느껴진다면 더 오래, 더 자세히 상대방을 관찰하는 것을 권한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03 잘 말하는 사람 말고, 잘 듣는 사람

이번 겨울이었다.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 2016을 들으러 갔다가 정관용 씨에게 토론이 무엇인지 배우고 돌아왔다. TV에서 심야토론, 100분 토론 등 각종 정치적 이슈 사항에 대한 프로그램을 방송하지만, 그것은 계속 자신의 주장만 반복해서 펼치고 있기 때문에 토론이라고 정의될 수 없다. 토론은 오히려 다음 대화에 더 가깝다.

A "아, 배고파."

B "우리 떡볶이 먹을까?"

A "어제 먹었잖아. 날씨가 추워져서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은데?"

B "그래. 그러면 김치찌개는 어때?"

A "좋아!"

일상 속에서도 자주 하는 대화의 단면이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정하는데, 그 과정은 모두 토론이다. 어떠한 PLAN A(떡볶이)가 나오고, 그 안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수렴하고, 새로운 PLAN B(김치찌개)를 제시한다. 수정된 안이 받아들여지면, 어떤 문제 사항에 대한 대안이 결정된 것이다. 토론이 아닐 이유가 없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의사 전달을 잘하는 사람 못지않게 드물거나 중요하다. 잘 들어주는 사람 역시 특별한 자신감이 그 비결이다. 어떤 확고한 가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정보로 인해 경로를 이탈하거나 그 무게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수용력 말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 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자명하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이상하게도 우리는 연인 사이에서만큼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노력한다. 꼭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사랑의 증거로 여겨지는 것처럼 행동한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뉠 때, 그리고 그 의견이 반드시 한 가지로 좁혀져야 할 때 우리는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토론만큼이나 쉽고, 부담 없이 접근해야 한다. 쉽지는 않다. 

의사 전달을 잘하는 이런 사람은 어릴 적, 모든 면에서 적절하고 완벽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도 아이를 사랑할 줄 아는 보호자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축복을 누렸음이 분명하다. 그런 부모는 자식이─적어도 한동안은─가끔 이상하거나, 난폭하거나, 화를 잘 내거나, 심술궂거나, 기이하거나, 슬퍼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수용할 줄 알고 그래도 가족의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줄 안다. 그렇게 하여 자녀가 성인이 되고도 고백과 솔직한 대화를 지속할 수 있게끔 하는 용기의 매우 귀중한 원천을 이루어낸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04 끝까지 치달아야 비로소 끝나는 마음의 비약
묘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자신이 어느 시대에 속해 있는지를 인식하는 일에 늘 능통하지는 않다. 과거에 강도를 당한 사람이 침대 곁에 총을 두고 자다가 바스락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 깨는 것처럼, 마음은 다소 쉽게 비약을 한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내 동생 민아는 때때로 마음의 비약이 극도로 치달을 때, 나에게 전화를 한다. 그럴 만한 일이 아닌데, 민아는 본인의 감정이 정도 이상으로 요동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내 전화번호를 누르는 것이다.

며칠 전, 민아는 아르바이트 사장님에게서 잔소리를 몇 마디 들었다. 그리고 조만간 민아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순간 일을 잘 못하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따라 사장님이 예민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민아를 위로했고, 30분 정도의 수다 끝에 민아는 곧 수긍하고 기분이 좋아져서는 전화를 끊었다. 

또 한 번은 민아가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 밖에 나와있었는데, 그 친구의 다른 약속과 겹쳐 30분가량을 기다리게 되었다. 민아는 다른 약속을 우선시하는 친구의 말에 약속이고 뭐고 다 파투내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다행히도 돌아가기 전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 감정을 나에게 쏟아냈다. 시간이 많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다고 민아는 말했으나, 나는 그것이 아니라 그저 친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일 것이라 설명했다. 그리고 민아는 또 기분이 풀어져서, 무사히 친구와의 약속에 참석할 수 있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내 동생이 아니라 내 친구였다면,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파도를 견디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래도 민아의 장점은 본인의 감정이 일시적이고 잠시 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성의 끝을 잡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 마음의 불을 꺼달라는 것. 좋게 말하면 대나무 숲이요, 나쁘게 말하면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하고 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 그 상황보다 더 큰 감정이 나를 덮친다는 것.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그럴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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