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목소리들

광장의 목소리들

토요일, 시청 앞을 지날 일이 종종 있다. 광화문 촛불 집회가 매주 열리기 시작한 이래로 항상 그 근처는 열기에 차 있다. 광화문까지 걸어나가지 않아도, 그 일대만 가도 사람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공기가 다르다는 말은 아마 그럴 때 쓰는 말 같았다. 친구들끼리, 연인과,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손 붙들고 나온 사람들을 자주 마주쳤다. 초등학생부터 중장년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가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이는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사람들과 마주쳤다. 길을 건너기 위해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거리에 세워 둔 큰 관광버스에서 사람들이 하나씩 내리고 있었다. 관광객?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의 연령대는 모두 60대는 되어 보였다. 산악회? 그다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곧 이곳이 산과는 꽤 거리가 있는 도심 한가운데라는 것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피켓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구 본부, 인천 본부. 아마 내가 못 본 다른 지역도 있었으리라. 모두가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뉴스에서 '박사모'라고 부르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관심을 가진 지 이제 얼마 되지 않았다. 투표를 한 지는 이제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야 정치에 대해 알기 시작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잘 몰라서, 이곳에 이렇다 저렇다 나의 생각을 적기가 망설여진다. 잘 모르기 때문에 내 말에는 각종 오류들과 편견들이 넘쳐날 것이 우려되어 조심스럽다. 다만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적어보려고 한다.

나는 '애국보수'라는 말이 이상하다. '보수'의 개념은 기존에 있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반대로 '진보'의 개념은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그러하다. 반면, 애국이라는 단어는 전혀 보수, 진보와 상관이 없는 글자의 조합이다. 정치적으로 진보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애국'하고자 하는 일이다. 조금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인들이 할 일이고, 그것은 모두가 애국하고자 하는 일이다. 한쪽만 애국이 아닐 진데, '애국'이라는 말을 앞세우고 태극기를 온몸에 휘감는 것이 나는 바라보기가 약간은 불편하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모두 '非애국자'로 몰아세우려는 진영 논리에 따른 전략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온통 태극기를 휘감고 지나는 사람들이 신기하여 피켓 몇 가지를 유심히 읽어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과 무궁화의 합성 이미지 위에 '무궁화의 진실이 밝혀지리라' 대충 이런 문구가 적혀 있어 다시 한번 의아함을 느꼈다. 무궁화와 진실은 무슨 관계에 있으며, 또 무궁화와 박근혜 대통령 본인과는 또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이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는지.

당 부분 확신하는 바이다. 그런 칭찬을 받다가 망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인간이랑 칭찬에 부응하고자 무리하기 마련이고, 그러면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무라카미 하루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깊은 상처가 되는가 하면, 잘못된 칭찬을 받는 것일 터다. 이미 상핵이 되느냐, 마느냐는 이제 헌재의 판단에 따라 여부가 달라진다.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탄핵이 되어야지!"라는 말은 "대부분의 사람이 김치찌개를 좋아하니 너도 좋아해야 해."라는 말과 유사함을 가진다. 어떤 사안에 대해 100%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 여부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라 믿고 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이다.

기본정책이 없는 정부는 화장실 없는 맥줏집 같습니다. 비유.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무라카미 하루키

그러나 그 논쟁은 지금껏 있었던 '정책'에 관한 사유가 되어야 하고, '법률'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무엇이 쟁점인지 우리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연일 뉴스에 나왔던 박근혜 대통령의 주사 논란에 있어서, 나는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피부 주사를 맞았다고 조롱하는 것이 불편했다. 젊어지려 애쓴다고 혀를 차는 사람들이 의아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주사 맞을 수 있다. 단지, 논란이 되어야 하는 것은 대통령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어떤 돈이 쓰였는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그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행적에 관해서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만,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깎아내리는 비난은 지나친 사생활 침해가 아닌지.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선 어때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광화문뿐만이 아니라 SNS에서,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토론이 벌어진다. 자칫 그 토론은 논쟁으로 발전하여 서로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과 욕설로 마무리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믿고 있다.

어제, 아시는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열 명이 있으면, 요새는 열 명의 사람들이 다 생각이 달라서 문제야."

아니다. 사실 열 명의 생각은 다 다른 것이 당연하다. 모두가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무서운 사회는 없다. 우리 모두 합심하여,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더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고 생각하던 시대는 이미 갔다. 급작스러운 근대화를 겪은 세대가 아직도 새마을 운동의 여운을 가지고 살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한 가지 생각을 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들어주어야 한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어른들이 이제는 알아주셔야 할 텐데.

우리가 스무 살이던 시절에는 분명 자신이 서른을 넘으면 지금의 어른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어른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세상은 확실히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의식 수준이 높고 이상에 불타는 우리가 어른이 되니 세상이 나빠질 리 없겠지. 나쁜 것은 지금 저기 있는 어른이다. 머잖아 전쟁은 사라지고 빈부 격차도 줄고 인종차별도 없어질 거야,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존 레넌도 (아마)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체 게바라도 (아마)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무라카미 하루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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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어주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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