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오늘 버스를 잘못 타서 원래의 목적지보다 훨씬 떨어진 강남에서 급히 내렸다. 마리오 보타의 붉은 건물을 보다가 불쑥 안으로 들어갔다. 강남 교보였다.

교보문고는 광화문을 더 자주 갔던 터라, 오랜만에 찾은 강남점은 아주 거대하게 느껴졌다. 요새 그래도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교만한 생각이었다. 아주 갈 길이 멀다.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았고, 책도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책과 책과 책으로 이루어진 공간 속에서 길을 찾기가 어려워서 몇 바퀴나 빙빙 돌아야 했다. 한 바퀴 돌 때마다 내 품 안의 책들도 한 권 한 권 늘어서, 결국 책을 양손 가득 사버렸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칸을 보니 아직도 한 번 불꽃을 피우기 시작한 인문학의 열기는 죽지 않은 것 같았다. 그와 더불어 이제 인기몰이를 시작한 '미니멀리즘 라이프'에 대한 충고들도 이젠 제법 여러 가지 버전이 책으로 나와 있었다. (하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단순하게 살기는 글러먹은 인간이라서 그 류의 책은 펼치지 않기로 하였다. 나는 무언가를 모으는 걸 좋아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그리고 역시나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자기계발서의 인기는 뜨거웠다.

 

지금까지 서점을 드나들면서 디자인 관련 서적을 꽤 많이 들춰봤지만 어떻게 해야 창의적일 수 있는지에 대하여 명확히 알려준 책은 없었다. 건축에는 여러 거장이 내놓은 '천재적' 영감의 산물들에 대한 해설이 가득했고, 그래픽 쪽에서도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서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추천을 받아 읽은 에세이집에서 공감 가는 창의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디어는 정말 어디서 오는 걸까?

사람들은 지식을 많이 쌓은 사람이 자연스레 지혜로운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식을 많이 쌓기만 한 사람은 꼰대가 될 확률이 더 높다. 지식은 자칫 지혜로 이어지는 통로를 가로막는 벽이 되곤 한다. 그것이 지식의 저주다. 지식과 지혜는 트랙이 좀 다른데, 그 다른 궤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태도가 유연성이다. 끝없이 새로움에 열려 있고, 자기가 아는 지식을 계속해서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지혜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지知 지식 지혜,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01 왜 꼭 그래야만 해?
요컨대 우리는 똑똑한 자들의 권위도, 많은 사람들의 믿음도, 확고부동한 듯한 전제도, 오랜 세월의 관성도 의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모든 것들은 기존의 것을 의심하는 데서 비롯했다.

─ 벼락 출세한 점성술사의 가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아이디어를 처음 얻는 방법을 사람들은 모두 사람마다 다른 곳에서 배울 것이다. 누군가는 책 속에서 배워낼 것이고, 누군가는 부모님의 가르침에서 배울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는 대학교 수업 안에서 터득해 내었다. 대학교 3학년 1학기 설계 스튜디오 반에서였다.

당시 일주일에 두 번, 교수님과 대면하여 나의 과제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져가든, 교수님의 질문은 항상 같았다. 질문은 항상 같았으나, 나는 매 시간 예상치 못한 공격에 기습당한 것 마냥 흔들렸다. 

"왜? 왜 꼭 그래야만 해?"

교수님은 차분히 물었고, 나는 어버버 내 생각이 가진 타당성에 대해서 두서없이 설명했다. 그 '왜'라는 질문이 어찌나 촌철살인 같았는지. 그리고 그 질문을 한 학기쯤 연속하여 듣고 나니, 조금은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학기가 끝나자 딱 한 가지를 배웠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워냈다.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앞으로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은 맹목이다. 숨 쉬지 않는 것은 바스러지는 법이다. 전통은 완결된 대답이 아니며 절대 불변의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 제사상에 마카롱을 올리는 문제에 관하여,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아이디어는 無에서 번뜩이며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생각에 '왜'라는 물음을 던지면, 그제야 고개를 불쑥 내미는 녀석이었다.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없는 것인데, 우린 너무나 쉽게 많은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면서 산다. 아주 당연한 것을 뒤집어엎었을 때, 아이디어가 나온다. 

꼭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서 물음은 필요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당연한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오래 존재했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의 당위성을 갖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뻔뻔하게 그 자리에 눌러앉아있던 것일 수도 있다.

 
02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

A도 좋고, B도 좋고, C도 좋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남자도 좋고, 저 남자도 좋을 때 우리는 둘 다 만날 수 있을까. 대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여러 아이디어가 흩뿌려져 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합쳐 유전자 조작을 시도하는 일이 아니라, 그중 하나를 선택해 내는 일이다. 모든 면에서 평타 이상 정도를 치는 사람보다 특출 난 매력 한 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가는 법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선택 장애가 없다. 선택지가 주어지면, 그 안에서 쉽게 더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내곤 한다. 점심 먹을 때도 그렇고, 쇼핑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갈등하는 나의 마음을 파고, 파고, 파고 들어가서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두 가지 중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A냐, B냐. 그래서 나는 결국 선택이란 많은 것들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골라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가장 효과적인 선택 방법은 역시 소거법이다.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다면 주저 없이 고르겠지만, 다 비등비등하다면 소거해 나가야 한다. 하나둘씩 없애다가 결국 둘만 남았을 때는 가정해 본다. 내가 A를 선택한다면, 또는 B를 선택한다면 어느 쪽이 더 아쉬울 것인가. 정말 상상으로도 안 될 때에는 친구에게 부탁해 가위바위보까지 한다. 네가 이기면 A, 내가 이기면 B야. 가위, 바위, 보! 그리고 누가 이기든 나는 내 마음이 가리키고 있는 바를 확실히 알게 된다. 가위바위보의 결과를 받아 들고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아쉽다고 생각했는지 그것만 가려낼 수 있으면 된다. 그 이후엔 미련 없이 한 가지를 버리고 마지막 남은 한 가지를 택해야 한다.

모든 이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은 거룩할 것이나 모든 이에게서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은 욕심이나 아둔함에서 비롯된다. 전지전능하지 않은 우리는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배제할 수밖에 없다. 배제해야 집중할 수 있고, 집중해야 비로소 어떤 색깔이 생기기 시작한다.

─ 커플을 받지 않는 게스트하우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꼭 선택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 선택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밋밋한 결과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까. 원래 한 가지 메뉴만 파는 집이 맛집이 아니던가.

 
03 말, 말, 말

건축이 예술이라면, 건축은 시각적인 예술이었다. 어딘가에도 한 번 썼던 것 같지만, 건축은 도면이고 이미지이고 나아가 보이는 건물이 되었다. 건물은 냄새가 나지 않고(물론 목구조 건물이라면 날 수도 있다.), 소리가 나지 않고(소리가 울리긴 한다. 사운드에 관한 건축설계도 설계의 큰 분야 중 하나다.), 맛도 물론 느낄 수 없으니 남은 것은 촉각과 시각뿐이다. 촉각이 한 5%, 시각이 95%를 차지하는 분야가 아닐까.

그래서 건축가들은 시각적인 표현 능력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들은 스케치를 했고, 모형을 만들어 보여줬고, 도면을 그려서 건물을 지어 올렸다. 그러는 동안 건축에는 철학이 생기고 스토리가 생겼지만,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말로 표현하고 포장하는 법은 아직 많이들 배우지 못한 것 같다. 건축은 보여줘야 한다는 뿌리 깊은 사고방식이 아직도 팽배하다.

프레임은 지금 든 몇몇 예보다 훨씬 깊은 층위의 문제라서 쉽게 짚어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러기에 언어에 대한 고민은 지금 당장, 내가 습관적으로 쓰는 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칼퇴근이 아니라 그냥 퇴근이다. 야근이 아니라 초과근무다. 몸값이라는 말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서운 말이다.

─ 언어는 사고를 프레이밍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건축은 시각적이어야 하지만, 언어로도 물론 표현되어야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표현방식이 아닌가. 그래서 건축은 언어로, 그것도 세심하게 정제된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정확하지 않은 용어와 표현들은 오해를 부르고 가치를 깎는다.

요즘 사람들은 가격이 싸면 '착한 가격'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소비자의 시각에서만 그렇다. 생산자가 착한 가격을 맞추기 위해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을 하든, 후려치기로 하청 업체를 우려먹든, 노동자의 비용을 제대로 안 쳐주든 말이다. 싼 가격이 착한 가격인 곳에서 제대로 친 제값은 착하지 않은 가격이 된다.

─ 언어는 사고를 프레이밍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건축에서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는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그것이 인간에게 가장 간편하고, 보편적인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표현되지 않는 아이디어는 결국 사장된다.

아이디어가 말로 표현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떤 단어가 쓰여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하는지,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중의적 표현은 없는지 확인되어야 하고 고민되어야 한다. 물론 그 기본이 되는 연습 방법은 책 읽기일 터이고, 조금 더 나아가면 글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하고 있는 행위처럼.


빔이 추천해줘서 읽은 책이다. 빔은 내가 혹여라도 빔이 추천해 준 책을 별로라고 생각할까 봐 전전긍긍했는데, 나는 아주 만족하며 읽었다. 가볍지만,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고 유쾌하지만 또 일면에서는 진지한 사고가 엿보이는 글이었다.

카피라이터는 부정할 수 없이 창의력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직업군 중 하나일 텐데, 저자는 일상 속에서 아주 유쾌하게 창의력을 대하고 있다. 읽고 있으면, 나도 일상 속에서 유쾌함과 창의력을 뽑아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단지 이 글 자체는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는 점을 밝혀 둔다. 저자의 주장이 아니라 나라는 필터를 한 번 걸쳐서 나온 결과물이다.

행복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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