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을 찍는 사진

시간의 흐름을 찍는 사진

01 사진을 잘 찍는 법

종종 포털사이트 메인글들을 뒤적거리다 보면 사진을 잘 찍는 법에 관한 포스팅들이 꽤 자주 눈에 띈다. 사진을 잘 찍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런 글들이 보이면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고양이처럼 클릭하고야 마는데, 결국 그런 포스팅에서 말하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카메라에 대한 상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ISO를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지, 흔들리지 않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어떻게 카메라를 쥐어야 하는지, 구도는 어떤 것이 더 안정적인지 등을 설명한다. 그런 지식들이 내가 읽고 싶은 내용은 아닌지라 대개 실망하며 창을 닫는다.

결국 내가 읽고 싶은 것은 어떻게 좋은 사진을 찍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좋은 사진인지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다. 풍경을 멋들어지게 찍은 것이 좋은 사진인지, 아니면 사람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어떤 것을 찍은 사진이 좋은 사진인지, 역사적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해 놓는 것이 좋은 사진인지 그 정의부터 제대로 내려져야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방법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02 좋은 사진

지금까지 본 많은 사진들 중에 훌륭한 사진들은 물론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사진 취향이 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브레송의 팬이라 브레송 사진전이 열릴 때면 어김없이 전시장을 찾고, 대림미술관에서 주말에 사람들 틈에 껴서 맥긴리 사진전도 관람했다. 그러나 사진으로 받은 가장 큰 감동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 찾아왔는데, 인터넷 기사에서 본 한 가족의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에서 남자와 아들은 무려 28년간 같은 구도로 가족사진을 남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늙어갔고, 마지막엔 새로운 생명도 태어났다. 어떤 사연으로 그렇게 본인들의 모습을 기록해왔는지는 알 수 없어도 사진만 봐도 느껴지는 묵직한 감동이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었다. 흑백사진으로 남겨진 두 사람의 사진 속에는 두 사람도 물론 찍혔지만, 시간도 같이 찍힌 것이다. 그들이 겪은 긴 시간을 아주 찰나만큼씩 훔쳐본 것만으로도 이미 난 그 사진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다면 좋은 사진의 큰 조건 중 하나는 시간을 찍는 것이 아닐까. 좋은 사진이란 감동을 일으키는 사진일 것이고, 그 감동은 시간을 찍은 것에서 왔으니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눈으로 시간을 목격하고 있지만, 그것을 너무나 긴 시간에 걸쳐서 보기 때문에 변화를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그 변화를 사진으로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사진일 것이다.

 
03 시간을 찍는 법

시간을 찍어 보여주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정도 있다. 긴 시간 동안 장노출로 변화를 담거나, 시간을 두고 한 컷씩 찍어 그것을 모두 이어 붙이는 타임랩스 영상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하지만 장노출은 길어봤자 몇 분, 타임랩스는 길어도 하루. 몇 주, 몇 달에 걸친 변화를 찍으려면 아직까진 한 가지 방법밖엔 생각나지 않는다. 같은 장소에서 몇 주, 몇 달 동안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찍어 모으는 일이다. 그러니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으로는 역시 꾸준함이 아닐는지.

지금 다니고 있는 나의 회사는 3월부터 이 공장 건물에 입주해 생활하고 있다. 1960년대에 지어진 이 건물의 주차장(사실 건물의 구조 상 마당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가운데에는 특이하게도 큰 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베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시멘트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큰 나무는 고목이 아닌가 싶었는데, 봄이 되니 귀엽게도 새싹이 조금씩 돋아났다. 무슨 나무인지 싶었는데, 이번 가을을 보내고 나니 샛노랗게 물든 잎을 증거로 은행나무임이 밝혀졌다.

출근을 하다가 건물로 들어가기 전, 가방에 들어있는 필름 카메라로 생각날 때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도로 찍었다. 삼각대를 펴놓고 찍은 건 아니라서, 조금씩 구도는 변하지만 큰 뷰는 변하지 않고 지난 1년 간의 변화를 담을 수 있었다. 위 영상은 사진들을 최대한 맞춰 보기 편하게 영상으로 만든 것. 나무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1년 사이에 꽤 많이 커졌다.

괜히 사진을 모아놓고 보니 뿌듯하다. 사진을 잘 찍고 싶은 사람들 모두 일상 속 같은 장소에서 1년 간 같은 것을 찍어보는 것은 어떠한지? 사실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가장 중요할 지도.

천 년의 시간을 잊지 않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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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도시,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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