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인턴 72일차

도코모모 마감 날.

언제나 마감은 숨 가쁘고, 불안하고 지친다. 아슬아슬하게 마감을 할 수 있는 탓은 결국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엔 내가 회사에 출근을 해야했기 때문에 다른 팀원들이 마지막까지 힘 써주고 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입장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돕고 싶은데 그러면 오히려 시간을 지체하는 것밖에 안될 것 같아서, 가만히 기다린다.

휴학을 하고, 한 달 동안 바로 유럽에 다녀온 뒤로 벌써 프로젝트가 4개째다. 오늘로 4개가 끝이 나고, 5번째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있다. 내가 4년 동안 했던 양을 휴학하고 6개월만에 말 그대로 해치우고 있다. 모두 내가 한땀 한땀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많이 배운다. 

포트폴리오를 한 장이라도 채워보자는 소박한 바람으로 정림학생건축상에 나가서 운 좋게도 입상을 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다른 팀들의 발표를 직접 들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비록 대상은 못 탔지만 정말 큰 경험이어서, 시야를 우물밖으로 돌릴 수 있었고 조금 더 눈이 높아질 수도 있었다. 학교마다 분위기와 교육하는 방식이 매우 상이해서 나오는 작품들도 각기 개성이 뚜렷했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아이디어를 내고 깊게 고찰한 것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바로 인턴 사원으로 들어와 도서관 현상 설계 마감을 함께하고, 당선이 되어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오묘한 기분도 느껴봤다. 정말 이것이 현실화 되는구나. 처음 봤다. 그리고 이제 7월이면 도서관 실시 설계가 시작된다. 당선이 되고도 갈 길은 아직 멀다. 어찌보면 지금부터가 제일 중요할 수도 있다. 처음의 개념을 놓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평생 처음 보는 프로그램의 프로젝트를 3주간 짧게 진행하게 되었다. 그것은 심해공학수조동으로, 배를 만들거나 해양관련실험을 할 때 바다와 같은 환경을 재현해 내는 시설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3주 동안 짧게 진행한 탓에 부족한 점이 있어서 3등에 그쳤지만, 희귀한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또 나름 재밌었다.

다음이 바로 도코모모 세운상가. 우리끼리 진행하는 프로젝트라 한 번 결정되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진행. 뚜렷한 개념을 가지고 진행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규모가 크고 고려할 것들이 많아서 생각보다 처음의 확실했던 아이디어가 힘을 잃어가는 것 같아서 아쉽다. 하지만 모두 무시한 채 진행할 수 없는 것은 도코모모 이번 공모 자체가 도시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까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마감을 제때 할 수 있기를. 그리고 끝나고 나서 어떤 작품들이 출품되었는지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내가 참여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보다 내가 들어갔던 프로젝트의 작품을 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잘 알고 있으니까.

오늘이 지나고 나면, 잠시 숨을 돌렸다가 다시 DMZ를 시작한다. 공간국제학생건축상. 국제 프로젝트이라서 제출도 갖다 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파일만 전송하면 된다. 마감은 10월까지지만 팀원이 일본으로 국제 스튜디오를 나가기 때문에 9월 안에 끝내는 것이 목표다. 바쁘지 않을 때 많이 만나서 아이디어를 내고, 그후에 혹시라도 서로 못 만날 지라도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직 시작하기 전이라서 어떤 작품이 나오게 될지 모르지만, 재밌게 진행하면 그만이다. 학교 과제처럼 이것 저것에 이리 저리 치이면서 끌고 나가는 프로젝트와는 다른 기분이다.

또 회사에서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재미가 없다고 과장님이 툴툴 거리시는 법원. 이번엔 정말 당선이 되고 말겠다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 번에 정말 된다고 생각하던 법원 프로젝트가 2등에 그쳤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법원 프로젝트까지 참여를 하고 인턴을 끝낼 것 같다. 중간에 심해공학수조동 프로젝트가 껴서 조금 일정이 늦어졌다. 원래는 8월 15일까지였으나 조금 더 길어질 것 같다.

휴학을 하면서 한숨 돌리고 일본도 다녀오면서 새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할 것이 많다. 바쁘다. 계속 일이 생기는 것을 보면, 그럴 때인가 싶기도 하다. 비록 마감이라고 이틀(2박 3일) 동안 8시간 자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것은 그저 꿈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두 번의 밤 동안 3시간 정도 잔 것 같은데 그래도 즐겁다. 지금은 초조하지만, 이 초조함을 지나면 역시 기분이 좋은 일이다.
 

Richard Rogers' Grades at School

Richard Rogers' Grades at School

마음이 무거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