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가을, 가을

가을, 가을, 가을

여름이 떠나면서 푹푹 찌는 것과 같은 더위는 지났지만, 여전히 햇빛은 뜨거웠다. 웬만큼 걸으면 긴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어도 더워서 소매를 걷게 되는 날이 이어졌다. 아빠의 걱정에 언제나 외투를 챙겨서 나왔는데, 하루 종일 더워서 외투를 한 번도 입지 못하고 들고만 다니는 날들이 몇 번 있었다. 가방에 구겨 넣거나, 돌돌 말아서 손에 쥐고 다니는 바람에 옷이 잔뜩 구겨져 버리곤 했다. 지난 주말에는 이틀 연달아 재즈 페스티벌에 다녀왔더니, 남자 친구가 내 얼굴을 보고 '뭐가 달라졌나 했더니, 얼굴이 탔네!'라고 말했다. 여름도 아닌데, 조금 억울하다. 그런데 어제부터 비가 그치더니, 날씨가 갑자기 훅 쌀쌀해졌다. 시원하지 않고, 바람이 차다. 가을이었다.

 
1

나에게 가을을 가장 먼저 알린 것은 엄마였다. 엄마는 이따금 책 속 어딘가에서 쓰여있을 법한 문장들을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한다.

이제 가을이 오나 봐.
내 마음으로 슬픔이 자꾸 들어와.

감정과 거리가 먼 딸은 가을이란 것을 타 본 역사가 없는데, 엄마는 가을이 오면 문득 슬퍼하고,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오늘도 일본에 있는 동생이 보고 싶다며, 11월 달에 잠깐 일본에 다녀올 수 없냐고 묻는다.

 
2

엄마에게 가을이 슬픔이라면, 나에겐 놓치지 않고 싶은 순간이다. 여름은 매해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겨울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항상 한 걸음 더 빨리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가-을'이 아니라 이건 '갈'이라고 볼맨 소리를 했다.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의 길이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여기저기로 사진을 찍으러 떠났다. 찍을 것은 많은데, 찍을 시간은 얼마 없는 날들이다. 하늘은 저 멀리 높아지고, 공기는 서울 어디라도 다 보일 것처럼 맑아지고, 은행은 노오랗게 물들고, 단풍은 뜨겁게 불타오른다. 아, 하나 더 있다. 갈대는 바람에 흩날린다. 여행하기 좋은 풍경이다.

 
3

가을이 온 것을 가장 실감하는 때는 다른 어느 날들처럼 카페에 갔을 때다.

"주문하시겠어요?"
"네. 아이스, 아니 따뜻한 카페 라떼 한 잔 주세요."

몇 달 동안 먹던 아이스 카페 라떼에서 문득 따뜻한 카페 라떼로 내가 옮겨 탈 때, 스스로를 보며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 이제 나의 계절이 가을이 되었구나.

묻고 싶다. 당신의 가을은 지금 무슨 색이고, 어떤 향이 나는지.

끈

새로운 걸음

새로운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