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금질의 도시, 서울

담금질의 도시, 서울

나는 서울 사람이다. 태어난 것도 서울, 자란 것도 서울,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서울. 서울을 벗어난 것이라고 해봤자 최장기간으로는 1년, 그리고 그 외에는 모두 몇 주 간 떠난 여행들이 전부인 서울 촌뜨기다. 아니, 나는 다섯 살부터 지금까지 광진구 자양동을 벗어나지 않고 있으니 자양동 촌뜨기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내가 친해진 사람들은 모두 남쪽 나라의 사람들이었다. 부산, 포항, 울산 등에서 올라와 사투리를 교묘히 감추고(물론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살고 있다 명절 때면 모두 훌쩍훌쩍 KTX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 학교에서도 그랬는데, 이게 웬걸. 회사에 입사하니 그곳도 남쪽 나라 사람들이 반절 이상! 가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사투리로 말하고, 고향 이야기를 한다. 물론 그들에겐 타지에 와 살고 있는 서러움도 있겠지만, 왠지 내가 보기엔 사투리와 표준어 2개 국어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이고, 서울 말고 다른 도시를 집으로 삼고 있는 데에 대한 부러움 또한 있다. 그들은 서울을 알지만, 나는 그들의 고향을 모르는 것에 대한 약간의 질투.



나의 남쪽 나라 지인들이 가장 서울 사람 같지 않을 때는 바로 요즘 같은 날씨가 지속되는 계절이다.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여름이 겨우 지나가고(이번 여름은 특히 심했다.) 이제 좀 저녁 때는 선선해지고 옷장에서 트렌치코트를 꺼내서 한 번 입어볼까 생각을 할 때, 갑자기 겨울이 얼굴을 불쑥 내민다. 갑자기 겨울의 예고편이 시작된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질 것처럼 갑자기 쑥 내려가고, 바람은 온풍기처럼 뜨끈뜨끈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온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차진다. 그래서 사계절은 봄 여어어어어어름 갈 겨우우우우우울이다. 아주 잠깐, 그랬나 싶은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며칠만 우리가 바라는 가을의 날씨를 보여주고 쌩 하니 달아나버린다. 그러면 남쪽 나라 사람들은 서울은 너무 춥다고, 서울의 겨울은 몇 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겨울이 벌써 왔다고, 이번 겨울은 어떻게 지내야 하나 걱정한다. 부산은 눈이 잘 오지 않는다고, 기모 후드 정도면 겨울을 날 수 있다고.

서울의 겨울이 추운 것은 맞지만 꼭 그렇다고 해서 서울에 가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주 세심히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가을이 숨어있다. 여름과 겨울 사이에서 때때로 빼꼼 고개를 내밀뿐이다. 서울의 가을은 삼한사온. 3일이 추우면, 4일 정도는 포근한 날씨를 되돌려 준다. 그래서 얼마 전 영하 2도까지 떨어져서 옷깃을 여밀고 목도리를 둘둘 두르게 하더니, 지난 주말에는 15도에 육박하는 온도로 목도리는 가방 속에 처박히게 하고, 웃옷도 벗고 다니게 만들었다. 그래도 의심할 여지없이 가을임을 확실히 느끼게 하는 것은 역시 은행나무다.

겨울이 추운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겨울의 추움이란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의 칼바람이 부는 날씨인 것이고, 그러다 가끔씩 포근한 날씨의 맛을 보여주는 담금질의 도시가 서울이라고. 서울의 날씨는 원래 그런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의 겨울을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남쪽 나라 사람들에게 가끔 아는 척을 해 본다. 이 정도의 날씨면 아주 따뜻한 것 아니냐고. 내가 서울 사람이라고 추위에 강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갑작스러운 추위에 겨울 옷을 후다닥 꺼내서 껴입을 수 있는 순발력 정도는 지니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다. 남한에서 강원도는 가장 추운 지역이지만, 북한에서는 강원도가 가장 따뜻한 지역이라고. 그래서 탈북자들은 강원도의 날씨에 춥다고 벌벌 떠는 남한 사람들을 보고 가끔 웃는다고 했다. 특히 함경북도, 이런 곳에서 온 사람들은 더더욱. 하지만 그들도 몇 년 지나고 나면, 서울이 너무나 춥다고. lol.

씀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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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래도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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