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로서의 글쓰기

친구로서의 글쓰기

01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북적이는 학교에 있는 시간들이, 그것도 시끌벅적한 쉬는 시간이 더 어려웠다. 누가 나에게 말을 걸까, 누가 나를 쳐다볼까, 그럼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떠다니는 나 같은 사람에겐 쉬는 시간은 과한 자극이었다. 같은 반 친구가 나에게 무어라 말을 걸면 왜 나에게 말을 걸었을까 몇 번이고 다시 생각했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내가 대답을 이렇게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대답을 저렇게 하면 어떻게 보일지 많은 상상들이 머릿속에서 비눗방울처럼 끊임없이 생겨났다. 그것은 내가 그저 내성적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내가 가진 성격 탓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친구는 깊게 사귈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으니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누가 나에 대해 무언가를 물어본들 나는 많은 고려 끝에 가장 간단한 대답을 내놓았다.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길게 늘어지는 대화는 이어가기 어려웠고,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과 나의 관심사는 현저히 달랐고,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굳이 전파할 생각도 없었다.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겼으면 좋겠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나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

02

우리는 어떤 대상을 친구라고 정의할까? 내가 내리는 친구의 정의는 이렇다. 물론 함께 특정한 시기를 보낸 데에서 오는 동질감은 우리를 쉽게 친구라는 범위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결국엔 친구라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가진 생각, 내가 느낀 감정, 내가 정의하는 많은 것들에 대하여 스스럼없이, 두려워하지 않고 꺼내어 보여줄 수 있는 대상.

03

해리포터에서는 덤블도어가 가진 '펜시브'라는 물건이 등장한다. 은빛의 물이 담겨 있는 일종의 대야인데, 마법사 지팡이를 관자놀이 근처에 대고 쭉 빼내면 은빛의 기억들이 대야로 들어간다. 소설 속에서는 담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읽거나, 당사자가 가진 기억을 담아두는 용도로 쓰인다. 특히 덤블도어가 무언가 놓친 실마리를 찾아낼 때에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과 기억들을 펜시브에 빼놓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나는 그토록 쉽게 생각을 덜어낼 수 있는 펜시브라는 물건이 정말 갖고 싶었다. 현실세계에서 펜시브 같은 물건을 찾자면, 역시 그것은 일기장인데 펜시브만큼 간편하고 빠르게 생각을 내려놓을 수는 없지만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 생각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썼다. 사전적 정의로 일기는 하루를 기록하는 글일 테지만, 나에겐 나의 감정을 쏟아붓는 우물 같은 공간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물론 썼지만, 그보다는 나에 대한 글이 더 많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기록이었다. 기록보다는 관찰이 더 올바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 내 내면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관찰.

많은 이야기가 일기장 안에 담겼다. 슬프거나 분할 때 더 많은 글이 쓰였다.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을 때, 그에 관해 썼다. 여자 친구든, 남자 친구든 상관없이 내 감정을 들뜨게 하는 상대라면 예외 없이 나의 일기장에 담겼다. 감정이라는 큰 파도가 찾아와서 흔들 때,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날 때, 일기를 그럴 때 끝도 없이 써졌다. 쓰다 보면 팔이 아파져서, 왼손으로도 글자를 적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나의 감정은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글로 나의 감정을 복기하면서, 왜 나는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이유를 알고 나면, 울렁이며 치솟던 감정은 어느새 이성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화가 나고 슬펐던 많은 일들이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내가 포용할 수 있는 감정의 범위가 넓어졌다. 웬만한 일에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어졌다. 글쓰기의 힘이었다.

감정을 나누고, 생각을 교류하는 것이 친구라면 일기는 부정할 수 없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좋으면 체면 차리지 않고 실컷 좋다고 말할 수 있었고, 싫으면 이 말이 혹여라도 그 사람에게 전해질까 전전긍긍하지 않고 속이 시원할 때까지 왜 싫은지 그 이유에 대한 번호까지 매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많은 것을 혼자 썼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생각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한 글. 그것도 추후에 다시 읽어 볼 미래의 나를 위한 글이 아니라 당시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덜어내는 용도의 글이었다.

04

그리고 세월이 지나 이제는 아주 가끔, 기회가 닿을 때 일기장을 펼친다. 마지막으로 6개월 전에 썼던 것을 들춰보면서 항상 반성하면서 조금 더 일기를 자주 써야지 다짐한다.

대신 요즘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어렸던 나는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두려워했는데, 내 주변에 머무르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를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내 안에서 돌고 돌던 생각들이 이제는 조금 다듬어져서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이제 나는 일기장에게만 잔뜩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넘어서 불특정 다수에게 읽히게 될 글을 쓴다. 나의 글을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을 품고.

쉽게 말하는 것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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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에 대한 쓸데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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