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걸음

새로운 걸음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하지 못 한다.’

2011년 카카오톡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적어놓고 바꾸지 않은 상태 메시지이다. 종종 오랫동안 나를 알아온 몇 명의 지인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곤 한다. 나는 지금이 아니면 놀 수 없으니 열심히 놀자는 뜻이라고 하면서 하하 웃지만(그 뜻도 물론 맞다), 사실은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주문과도 같은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것. 심지어 나는 개학날도 두려움에 휩싸여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등교했다. 내가 무언가를 빠뜨리고 왔을까 봐, 무언가를 잊었을까 봐, 오늘이 개학날이 아닐까 봐 온갖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모두 예상하다시피 개학날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려움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인생에서 새로운 한 발자국을 내디뎌야 할 때, 내 속에 살고 있는 그 두려움을 이기려고 항상 되뇐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하지 못한다고.

 

나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준 그날 저녁의 일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봤다. 불도저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임씨 성을 가진 그에게 ‘포크레임’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도 않을 텐데,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확신을 갖고 제안을 던졌다. 같이 일하고 싶다고 했다. 스카우트 제의였다.

나는 나의 첫 번째 회사를 다닌 지 1년 반이 지나고 있었다. 내가 입사하는 시기에 새로 개소한 사무소였다. 사무실은 크지 않았지만, 회사의 많은 부분들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보람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도 손가락에 꼽을 만큼 인원이 적은 회사였지만,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모두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과정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일을 대충 치워버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그쪽으로 마음이 어느 정도 기울었다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안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더라면 고민할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거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주일의 시간을 달라고,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할 거라고 했다. 그 이상 더 고민해봤자 대답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일하던 회사와 새로운 제안으로 손을 뻗어온 회사, 그 사이에 내가 놓여 있었다.

 

고민이란 녀석은 지니고 있으면 있을수록 무거워지는 보따리와 같아서 최대한 빨리 바닥에 내려놓는 편이 좋다. 오래 들고 있어봤자 고민은 가벼워지기는커녕 점점 무거워지기만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저 고민을 오래 데리고 있기만 해도 스르르 녹아서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하곤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은 결국 단칼에 잘라줘야 끝이 난다.

한 5일 정도 고민을 데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괜한 미안함에 망설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결정은 짧은 순간에 이루어졌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할 것이라면, 저지르고 후회하자.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데 두려워하지 말자. 두려움은 어차피 내 안에 살고 있는 놈이고, 저지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만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실패해도 아직은 괜찮을 때,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보려고 한다. 어디로 가든, 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위 글은 월간 에세이 9월호에 실렸던 에세이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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